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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흔들렸다. 샌즈에 의해 억지로 벌려진 다리는 힘겨운 듯이 바르르 떨렸고, 뒤로 꺾인 채 고정된 팔에서 둔탁한 고통이 끊임없이 느껴졌다. 이따금 발버둥치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거리곤 했지만 재갈을 물고 있는 입술 사이로 신음과 비명 사이의 소리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샌즈가 뭉근하게 허리를 돌리다가 어느 부분을 건드리자 파피루스는 자지러지듯이 움찔거렸다. 이율배반적으로 힘을 얻어가는 물건은 자극으로 빳빳하게 고개를 들었고 제대로 다물 수도 없는 입술에서는 연약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잔뜩 괴로워하는 얼굴을 하면서도 자기 아래에서 헐떡이는 남자를 무자비하게 범하던 샌즈는 거칠게 허리를 흔들다가 속도를 높였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린 파피루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안된다..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최근 잇따른 임무들로 지친 신체는 휴식을 갈구하고 있었건만 그는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머리에 닿은 베게의 감촉도, 몸 아래에 짓눌리는 매트리스와 시트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다가왔다. 평소라면 짐을 부드럽게 잠으로 이끌어줄 엔터프라이즈의 엔진소리마저 도와주지 못했다. 결국 그는 억지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어둠속에서 확실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책상 위에 놓여있을 서류를 떠올리며 시선을 옮겼다. 잠도 안 오는데 차라리 서류나 처리할까. 머리 한 구석에서 말도 안된다고 스스로를 비웃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정도로 절실했다. 끝없는 활자들의 나열에 집중하면 어느 순간 잠에 들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은 채 고민하던 짐의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져서 드리우지 않아 어두운 골목길의 고요함은 구두의 마찰음과 거친 숨소리로 산산조각 났다. 이미 감각이 사라진지 오래된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니 근육과 관절은 소리 없는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옆구리는 칼로 찢기듯이 쑤시고 무릎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어딘지도 모를 길을 헤매면서도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처음에 봤을 때에는 그저 예쁘장한 여학생으로만 봤다. 그리고 자신의 음흉한 시선이 골반과 가슴께 머무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귀엽게 올라간 눈꼬리를 접으며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의 섬뜩함을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남자는 점점 좁아지는 길을 불안한 눈빛으로 훑어봤지만 뒤로 돌아갈 수 없었기에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길을 ..
“레비씨, 이쪽 봐봐요.” 침대에 누워 여운을 느끼고 있던 레비는 고개를 뒤로 살짝 돌려 발견한 카메라에 놀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는 셔터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 안에 갇힌 둥근 곡선, 산호색 머리카락, 그리고 물빛 눈동자. 흐름을 잃은 채 굳어있는 시간. “..뭐야?” 손안에 들어온 것과 똑같은 눈매로 레비가 말을 걸어왔다. 이불로 야무지게 몸을 가린 채 앞으로 기대자 목가에서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다. 샴푸와 섞인 체향에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을 뒤로 뻗고 움푹하게 들어간 부분에 코를 묻었다. 작게 웃자 키득거리는 진동이 어깨를 타고 퍼졌다. 자국을 남길 수 없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끼며 가벼운 입맞춤을 드러난 어깨에 심었다. "예뻐..
강력 1반은 그 이름에 풍겨오는 이미지와 다르게 점심을 먹은 후 느긋하게 커피 한잔을 즐기고 있었다. 자주 있는 평화로움도 아니었고,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에 불과했지만 가끔 가뭄에 콩 나듯이 조용한 분위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여유로움을 한방에 깨부순 건 문짝을 박차고 들어온 김두식이었다. 짧은 더벅머리에 뒷목까지 시원하게 드러난 와이셔츠. 손가락에 낀 굵은 금반지와 목에 걸린 금목걸이. 사람을 위축시키는 위협적인 눈매는 불쾌함에 젖어 더욱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다가 얼굴의 베인 흉터는 얼핏 보면 조폭 두목을 연상시키게 했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고 있던 형사들은 비록 놀라기는 했지만 곧 일사분란하게 일어나 그에게 경례했고 강력 1반 반장 김두식은 자기 자리로 씩씩거리며 걸어갔다...
안토닌 클라우드 향 - “어, 미안. 내가 늦었다.” 다리 위를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길을 나란히 걷는 일행에게 건네는 말소리, 공중에서 흩어지는 자동차 소리를 뚫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안토닌에게로 흘러들어왔다. 사실 그는 목소리가 귓가에 닿기도 전에 이미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부드러운 섬유 유연제와 손에 들고 있는 커피의 향에도 전부 가려지지 않은, 피비린내. 본능에 따라서 피를 마시고, 그렇기 때문에 처연한 존재들의 냄새. 훈은 오른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다른 손은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느긋하게 걸어갔다. 친구와의 약속에 5분 늦은 것 마냥 미안함과 가벼움이 적당하게 섞인 미소였다. 사실 영원을 사는 ..
로버트는 공중에 떠다니는 촛불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위에 실을 매단 것도 아닌데 공중에 머무를 수 있는 건 마법 때문이겠지? 집에서도 딱히 마법을 자주 사용하지 않아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호기심에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꾸욱 억눌렀다. 착한 아이는 그러지 않을 거니까. 어머니가 마법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시작한 지 일 년도 안 되었을 때, 부엉이 한 마리가 집으로 와 편지를 주고 갔다. 로버트랑 놀고 있던 에밀리는 꺄륵하고 소리를 치며 살랑거리는 날개를 만지기 위해 오동통한 손을 내밀었고 아이를 품에 안고 있던 로버트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겨울 이불 안에 있는 깃털보다 부드럽다고 감탄하던 에밀리의 볼이 둥그스름하게 밝아졌다. 아이들이 창틀에 앉아 자신의 날개를 부리로 매만지는 ..
주변이 온통 빛으로 차있는데도 이렇게 절망스러울 수 있구나. 로버트 그레이엄은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핀더파이어, 악마의 화염은 기이할 정도로 큰 불덩이를 토해냈다가 이내 불로 된 짐승으로 모습을 변모하고 있었다. 뱀처럼 벽을 길게 훑어가는 모습도, 불꽃으로 만들어진 용이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모습도 보고 있던 로버트는 문득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떨궜다. 아. 그제야 망토에 불이 붙었다는 사실을 눈치 챈 그는 가벼운 손놀림으로 망토를 벗어냈다. 어차피 소용도 없는 것. 핀더파이어에 닿은 것은 무조건 재로 돌아간다.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붉은 꽃. 물방울 하나가 또르륵 떨어지자 그는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비볐다. 연기 때문에 눈이 매워서 그런가보다.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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