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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자캐

피드님의 모브?레비

잡초양 2016. 8. 31. 00:50

 

레비씨, 이쪽 봐봐요.”

 

침대에 누워 여운을 느끼고 있던 레비는 고개를 뒤로 살짝 돌려 발견한 카메라에 놀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는 셔터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 안에 갇힌 둥근 곡선, 산호색 머리카락, 그리고 물빛 눈동자. 흐름을 잃은 채 굳어있는 시간.

 

“..뭐야?”

 

손안에 들어온 것과 똑같은 눈매로 레비가 말을 걸어왔다. 이불로 야무지게 몸을 가린 채 앞으로 기대자 목가에서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다. 샴푸와 섞인 체향에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을 뒤로 뻗고 움푹하게 들어간 부분에 코를 묻었다. 작게 웃자 키득거리는 진동이 어깨를 타고 퍼졌다. 자국을 남길 수 없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끼며 가벼운 입맞춤을 드러난 어깨에 심었다.

 

"예뻐서요. 사진 찍었어요."

 

머리카락 뿌리까지 선홍빛으로 물들인 채 곤란한 얼굴을 한 레비가 그 말에 입술을 벌렸다. 지워줘. 작은 목소리로 던진 그 한 마디를 애써 듣지 못한 채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품에 쏙 들어오는 체온이 마음에 들어 미소가 절로 걸렸지만 역시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이 얼굴에 꽂혔다.

 

"싫어요. 좋단 말이에요."

 

그리고 아무도한테도 안 보여줄게요. 약속.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잠시 망설이더니 레비가 본인의 손가락을 걸었다. 얽힌 손가락들을 확인이라도 시켜줄 요량으로 한번 악수하듯이 흔들고 풀었다. 레비는 여전히 시선이 휴대폰에 머무는 듯했지만 이불 안으로 손이 하나 들어오자 흠칫 놀랐다. 손바닥에 감기는 따뜻한 피부를 어루만지다 보니 다시 동하기 시작했다. 레비를 꼭 안은 채 뒤로 누웠다.

 

얼굴의 곡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넘겨주었다. 평소처럼 앞머리를 땋아 고정시키면 볼 수 없는 광경.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빙그레 웃었다.

 

"그러지 말고 한 번 더 하면 안돼요?"

 

 

하얀 이불 아래로 뻗은 등이 아침 햇살에 빛났다. 손가락으로 드러난 어깨와 팔을 훑어 내리며 발갛게 얼굴을 붉힌 채 부드럽게 품에서 녹은 레비의 얼굴을 잠시 떠올렸다. 누가 자기를 만지는 손길에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린 레비는 잠시 잠에 취한 시선을 공중에 던졌다. 미안해요.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더 자라는 의미로 손을 뗐지만 레비는 고개를 내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옅은 빛이 창을 통해, 그녀 위로 흩어졌다.

 

순간 졸음이 아직 속눈썹에 잔뜩 엉긴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휴대폰을 꺼내 갤러리를 열었다. 화면 안에는 어제의 놀란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침대 한 구석에 벗어놓은 검은색 브래지어까지. 어느 하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레비씨. 화면을 터치해서 찍어놓은 레비의 사진을 선택했다. 그리고 휴지통 모양의 아이콘을 눌러 완전히 지웠다. 지금 왜 이걸 보여 주냐는, 일렬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다는, 의문섞인 시선에 대답했다.

 

"레비씨가 싫다면 안 찍을게요."

 

레비씨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게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기억이니까.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작게 웃은 그녀의 얼굴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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