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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조차 구름에 가려져서 드리우지 않아 어두운 골목길의 고요함은 구두의 마찰음과 거친 숨소리로 산산조각 났다. 이미 감각이 사라진지 오래된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니 근육과 관절은 소리 없는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옆구리는 칼로 찢기듯이 쑤시고 무릎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어딘지도 모를 길을 헤매면서도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처음에 봤을 때에는 그저 예쁘장한 여학생으로만 봤다. 그리고 자신의 음흉한 시선이 골반과 가슴께 머무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귀엽게 올라간 눈꼬리를 접으며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의 섬뜩함을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남자는 점점 좁아지는 길을 불안한 눈빛으로 훑어봤지만 뒤로 돌아갈 수 없었기에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길을 막는 벽을 눈앞에 마주했다. 이 곳만 벗어나면 안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앞으로는 길에 다니는 여고생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겠다는 다짐이 한 순간에 날아가며 조금이나마 마음에 품고 있던 희망이 얇은 유리처럼 박살났다. 지금까지 계속 그를 움직이게 했던 원동력이 사라지자 남자의 다리는 실이 끊어진 인형마냥 풀썩 꺾였다. 하지만 그가 땅바닥에 닿기도 전에 뒤에 나타난 양팔이 그를 붙잡았다. 여성의 하얀 팔이 양옆으로 자신을 감싸 안는 걸 바라본 남자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잠시 푸드덕 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성인 남성 한 명을 솜인형처럼 가볍게 들고 목에 이빨을 박아 넣은 모니는 피를 머금다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감정적으로 동요된 사냥감일수록 말로 형용하기 힘들정도로 중독적인 맛이 있었다. 인간들이 약재로 쓴다는 사슴 피가 이런 맛이지 않을까 싶었다. 다리를 부러뜨려 고통을 맛보이고, 사냥당하는 공포에 떨게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받게 하면 피 속에 아드레날린이 가득 차서 훌륭한 약재가 된다는데. 모니는 피를 한 모금 꿀꺽 삼키다가 다시 양 볼을 빵빵하게 채우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는 절대 두 가지 맛을 비교해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뒤따라왔다. 채식은 하지 않는 주의인지라.
훈은 달빛이 닿지 않는 담벼락에 올라 앉아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피를 모니의 입술에 대자마자 어둠에서 검붉은 색 눈동자가 점점 발갛게 물드는 것이 꽤 장관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허리 아래까지 늘어뜨린 뱀파이어는 머리카락이 입에 들어가는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넘기고 있었다. 위로 올라간 눈꼬리하며, 이마를 가리는 앞머리, 그리고 건강미를 뽐내는 몸매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에도 매력적인 외모였다. 아마 그래서 그녀의 사냥감도 방심했던 거겠지.
위험한 살기를 숨기고 접근한 다음에 본색을 드러내서 막다른 길로 사냥감을 몰아세우는 모습이 꼭 스포츠 경기를 보는 거 같아 재미있었다. 도망칠 수 있도록 거리는 유지하되, 자기가 뒤쫓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각인시킨 모습,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다가 그걸 한 순간에 박살내는 모습. 한두 번 한 거 같지 않은 완급조절이었다. 훈은 당연히 뱀파이어쪽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는 지는 쪽에 거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식사를 재개하느라 아래로 숙인 모니의 뒤통수를 턱을 괴고 바라보다가 그녀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치자 민망하다는 듯이 웃어주었다. 들켜버렸네.
“안녕?”
허공에 만난 눈동자는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문득 그 일렁이는 눈빛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욕망에 훈은 가볍게 벽에서 떨어져 바닥에 착지했다. 허리춤에 찬 권총이 벨트에 부딪히는 쇳소리가 살짝 났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 정체는 다 까발려졌는데 뭐 어때. 위에서 떨어지는 남자를 보고 경계하는 기색도,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걸 들켰음에도 긴장하지 않은 모니가 피식 실소를 흘렸다.
“구경 잘했어?”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모를 리가 없잖아. 양 손으로 잡고 있던 시체를 떨어뜨리고 손가락에 묻은 핏방울을 혀로 핥아 먹으며 그녀가 말했다. 붉은 혓바닥이 그보다 더 붉은 핏자국을 깨끗하게 닦아 올리는 걸 눈여겨보던 훈이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내가 조심성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
“그나저나 꽤 재미있는 식사를 하네. 식전 운동까지 철저하게 하고.”
말끔해진 손가락을 입술 사이에 문 모니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주변에서 진동하는 피비린내와 허기로 가득 찬 눈동자만 아니었더라면 훈이 재미있는 농담을 한 걸로 보였을 것이다. 나 안 잡아? 겁이라도 먹은 거야? 잔말이 많네. 도발적인 말과 다르게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머리카락의 끝이 그 움직임에 따라 살랑거렸다. 그 머리카락을 하나로 높이 묶으면 되게 잘 어울리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마무리 지으면서 그가 대답했다. 아니.
“나, 원래 예쁜 애들은 안 잡거든.”
그리고 넌 되게 예뻐서. 총을 쥐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양 손바닥을 내보이며 씨익 웃었다. 죽이기에는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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