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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차들이 성냥갑처럼 앙증맞았다. 손안에 들고 있던 생강 쿠키가 가루를 떨어뜨리며 부스러졌다. 마지막 쿠키까지 입술 사이에 문 호레이쇼는 손가락에 묻은 가루를 탈탈 털고 쿠키 조각을 완전히 입안에 밀어 넣었다. 이렇게 멀리 있는데 가루 좀 떨어진다고 누가 뭐라하겠어. 뻔뻔하게 자기 합리화한 그가 쿠키를 꿀떡 삼켰다. 알싸한 달콤함이 혀끝을 맴돌다가 버터의 고소한 향을 남기며 부드럽게 넘어갔다. 이윽고 품안에 있던 수첩을 꺼내 몇 가지 단어를 휘갈긴 그가 그 페이지를 찍 찢어 공중에 날렸다. 그리고 팔랑팔랑 내려가는 종이 위에 사뿐히 올라탔다. 일반적인 물리법칙에 의하면 그 얇은 종이와 함께 곤두박질쳐야할 그의 몸은 천천히 내려왔다. 물속을 가라앉는 것마냥, 느리고 여유로웠다.

 

건물은 회색 콘크리트로 만든,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건물이었다. 유난히 창문이 작다는 게 독특하다면 독특한 특징이었다. 깃털처럼 가볍게 정문 앞에 내려앉은 호레이쇼는 지팡이를 단단히 쥐었다. 그에게 그 건물은 우리이자, 상자이자, 감옥이었다. 끝에 둥근 손잡이가 달린 지팡이는 길고 곧게 뻗어있었다. 검은 목재를 이용한 굵은 몸체는 관리가 잘 되었음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반지르르 윤기가 흘렀다.

 

정문을 통해 당당하게 들어간 호레이쇼는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 둘을 바라보며 혀를 쯧 찼다. 아무리 얌전해도 뮤턴트는 뮤턴트인데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해서야 쓰나. 약간의 연민을 담은 듯이 말했지만 눈만은 서슬퍼렇게 빛났다. 굳은 얼굴의 경비원들은 호레이쇼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한명이 나섰다.

 

선생님, 여기부터는 출입증이 있어야합니다. 의례적인 절차라며 자신을 제재하는 갈색머리의 남자를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한손으로 들었다가 그의 머리를 세게 후려쳤다. 수박이 깨지는 듯 한 위험한 소리가 묵직하게 울러 퍼졌다.

 

그리고 긴장해서 테이저건을 겨누는 두 번째 경비원의 눈앞에서 종이로 접은 새를 날렸다. 새는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다가 얼굴 앞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던 그는 곧 눈을 감고 무너져 내렸다. 가까이 있는 남자의 한쪽 다리를 잡고 질질 끌었다. 다행히 다른 남자는 책상과 가까이 쓰려져서 귀찮음이 덜 했다. 잠시 동안의 작업 끝에 축 늘어진 두 개의 몸을 책상 안으로 고이 접어두었다. 굽은 등을 펴며 호레이쇼는 허리를 주먹으로 통통 쳤다.

 

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런 육체노동은 자제해야하는데. 실없는 소리를 해대고 그는 지팡이를 경쾌하게 앞뒤로 흔들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경비가 더 삼엄해졌다. 현명한 선택이네. 나한테는 귀찮지만. 입을 비죽 내민 호레이쇼가 속으로 생각했다. 대충 눈으로 새어보니 대여섯 명은 되어보이는 경비원들이 배치되었다. 플라스틱 곤봉에 테이저건까지. 걸리면 뼈도 못 추리겠네. 휘파람을 휘이 분 그는 말과는 달리 여유로운 몸짓으로 수첩에 빠르게 끄적이고 종이를 찢었다. 조각조각 난 종잇조각들을 손바닥에 가지런히 올린 그는 입김을 후우 불어 날렸다. 작은 조각들은 나비의 날개가 되어 팔랑팔랑 움직였다. 눈을 의심케하는 광경에 당황한 경비원들은 파리 쫓듯이 손을 휘저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보다 한 박자 빠르게 그들의 눈앞에서 나비가 펑펑 터지자 이내 눈동자가 뒤통수 안으로 굴러가면서 하나 둘 씩 쓰러졌다.

 

좋은 꿈꾸렴.”

 

널브러진 몸체들을 넘고 넘은 호레이쇼는 마침내 거대한 유리창 안에 앉아있는 아이델라와 마주했다.

 

작고 마른 인상의 소녀가 유리감옥 안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 청량한 하늘색 눈동자만큼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요하게 흐르지만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휩쓸려버리는 계곡의 물처럼. 아이델라는 그런 아이다. 한심하구나.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호레이쇼는 제자의 앞에서 그저 한숨을 쉬었다.

 

호레이쇼 스탈링에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무능하고 지킬 가치가 없는, 원숭이보다도 못한 존재들이었다. 그에게 인간은 모르는 걸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걸 억압하는, 실로 어리석은 이들이었다. 뮤턴트들이 인류보다 진화한 상위종이기에 그에 대한 본능적인 위기의식은 이해하지만, 살려면 알아서 기어야하는 건 당연하지 않는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날들은 이미 끝났다, 아이델라.”

 

애매한 말을 흘렸다. 사피엔스들과 슈피리어간의 사이좋음을 말하는 걸까, 그와 아이델라간의 사이좋음을 뜻하는 걸까. 아마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제대로 설명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스탈링씨. 아이델라가 딱딱한 말투로 더 말하기 전에 그는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죽이진 않았어. 오히려 아주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 거란다.”

 

물론 그 꿈을 이겨내지 못하고 안주한다면 영원히 잠들어있겠지만. 그리고 그 꿈이 언제 악몽으로 변할지 장담할 수 없다. 호레이쇼도 자신의 변덕을 예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걸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지.’

 

호레이쇼는 예전과 같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설마 유리창까지 깨줘야하는 건 아니겠지? 그 정도는 알아서 하리라고 믿는다. 한손으로 중절모를 들었다 내리는 식의 인사를 한 그는 망설임 없이 휙 돌아섰다. 하고 싶은 말들이 산처럼 쌓여있었지만 하나도 의미 없었다. 아이델라가 들을 리 없었으니. 아주 고집스럽고 우직한 제자 녀석. 피식 웃으며 호레이쇼는 잘게, 아주 잘게 찢은 종이를 바닥에 둥글게 흩뿌렸다. 잘 있거라. 그리고 아이델라에게 끝내 뒷모습만 보여준 채 나비 떼와 함께 사라졌다.

 

그가 서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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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둘이 뮤턴트가 되면 호레이쇼는 빼박 뮤턴트 우월주의쪽에 더 가까울 거 같고(이 AU에는 좀 더 무자비해보이지만ㅋㅋㅋ)아이델라는 공존을 주장해서 둘이 길이 달라질 거 같아요...ㅋㅋㅋㅋㅋ그럼에도 아이델라가 만약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에 의해 감금당하면 호레이쇼가 가서 풀어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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