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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로 말이 없나요 스튜어트씨?"


 평소라면 지겹다거나 먼저 죽이라고 하셨을 텐데 말이에요? 사만다 스튜어트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다가 한 박자 늦게, 제법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여름처럼 싱그러운 녹색 시선이 자신에게 꽂혔다. 많은 사람들이 클로이 에반스를 언급할 때 타오르는 듯 한 그 주홍빛 머리카락을 먼저 꼽는다. 사만다에게는 중요치 않았지만. 머리카락은 다른 색을 입힐 수도, 길이가 짧아질 수도, 심지어는 가발로도 가릴 수 있다. 하지만 눈은, 떨리는 눈꺼풀도, 흔들리는 동공도, 방황하는 시선도 숨길 수 없는 눈은, 변하지 않는다. 


 강산이 몇 번이고 변한 세월동안에도 바뀌지 않은, 메마른 잎사귀를 품은 눈동자를 바라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사만다에게는 안에 머금은 감정들이 일렁이는 클로이의 눈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을 마피아로 몰아가는 상황이 조금은 귀찮게 느껴졌다. 사만다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증스럽기는.


 첫 날에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로즈마리를 조사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멀리까지 가기 귀찮았을 뿐. 불행인지 다행인지 로즈마리는 시민으로 판명되었고 사만다는 또 다시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밤이 되자마자 클로이가 마피아였음을 확인했다. 


“알아서 해.”


 그녀가 살풋 웃었다. 어차피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눈 먼 손가락질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투표를 시작하자며 사람들을 종용하는 클로이를 무시한 채 한손으로 은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사만다가 한 팔을 들었다. 그리고 가는 손가락으로, 로즈마리를 가리켰다.


“그 전에 한 가지 말해두는데, 우리 로지는 시민이니까 걱정하지 마.”


 검은 안경알 너머로 미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이 시민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사만다가 단서를 흘렸다. 클로이는 앞으로 팔짱을 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나요? 늘 털을 곤두세우는 고양이 같구나. 미간을 찌푸리는 여자에게 사만다는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짤막하게 말했다. 


“그리고 클로이 에반스는 마피아.”



 차라리 마피아라고 하는 사람을 둘 지목했더라면 의심스러웠을 텐데, 시민 한명을 확실하게 짚어낸 덕에 사만다는 처형을 면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소용없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클로이는 자신을 죽이러 올 테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짧은 순간에, 사만다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오늘 밤에 보자꾸나. 그리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붉은 흔적을 남기며 사라지는 걸 눈에 담았다. 


 커튼 틈 사이에 들어오는 달빛이 사만다의 머리카락에 입맞췄다. 한 손에는 위스키 잔이 빛을 여러 갈래로 조각내고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니, 앞에서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바로 코앞에 서있는 클로이에게 사만다가 웃어보였다. 


“늦었네.”


 항상 신경을 긁는 말투야. 클로이는 아랫배가 꼬이는 감각에 총알을 장전했다. 차가운 금속음이 고요함을 깨뜨렸다. 은발로 다 가려지지 않는 이마의 한 가운데에 향해 그녀가 흔들림 없이 팔을 뻗었다. 그래도, 내 생각보다 게임을 잘하더구나. 자기 머리를 박살낼 총구 앞에서도 여유롭게 사만다가 말했다. 기분 나빠. 저 느긋한 얼굴이 일그러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왜인지 방아쇠에 얹힌 검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텐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초조함에 클로이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입안에서 쇠비린내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만다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악력으로 클로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총구를 바짝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댄 그녀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총구에 짓눌린 이마의 살갗에 붉은 동그라미가 새겨졌다. 스스로 안전장치까지 푸르고 클로이의 검지에 손을 겹치기까지 한 사만다가 중얼거렸다. 격정의 세월이 지나가 이제는 무덤덤하던 눈동자가 희열로 번뜩였다. 재미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겠지만, 그런 건 취향이 아니라서. 드러낸 이빨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마냥 새하얗게 빛났다. 


“너는, 나와 함께 가는 거야.”


 어차피 경찰인 자신이 죽으면 자연스럽게 클로이로 의심의 화살이 꽂힐 것이다. 클로이도 이것을 예상하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살리기에는 경찰은 너무 위험한 존재다. 사만다가 클로이의 정체를 폭로했을 때부터, 둘은 같은 길을 걸어갈 운명이었다. 이번에는 사만다쪽이 더 일찍 도착해있을 뿐, 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지옥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으마.”


 마지막으로 속삭인 사만다는 클로이와 함께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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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에에에에전에 같이 라오더즈 마피아했을 때 사만다가 경찰이고 클로이가 마피아였을 때 본의아니게 논개작전마냥ㅋㅋㅋㅋㅋ 클로이를 지목하고 죽은 적이 있는데 그게 둘의 관계를 잘 표현하는 거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서 로그를 써왔습니다!!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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