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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닌 클라우드 향 - < http://cafe.naver.com/commufi/1653 >
“어, 미안. 내가 늦었다.”
다리 위를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길을 나란히 걷는 일행에게 건네는 말소리, 공중에서 흩어지는 자동차 소리를 뚫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안토닌에게로 흘러들어왔다. 사실 그는 목소리가 귓가에 닿기도 전에 이미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부드러운 섬유 유연제와 손에 들고 있는 커피의 향에도 전부 가려지지 않은, 피비린내. 본능에 따라서 피를 마시고, 그렇기 때문에 처연한 존재들의 냄새.
훈은 오른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다른 손은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느긋하게 걸어갔다. 친구와의 약속에 5분 늦은 것 마냥 미안함과 가벼움이 적당하게 섞인 미소였다. 사실 영원을 사는 존재들에게는 5분이나 500년이나 다를 게 뭐가 있겠냐만은. 너는, 하나도 안 변했네. 센느 강을 지나치는 바람이 훈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헤집어놓았다. 짧은 머리카락사이로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아, 요즘 너무 추워진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다시 커피 한 모금 마시던 그는 몸을 부르르 떨고는 안토닌의 옆에 섰다.
몇 백년간, 언제나 그랬듯이 센느 강 위의 다리에 서성이던 안토닌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짙은 푸른빛을 머금은 흑발,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매듭, 시리도록 새파란 눈동자. 꽤 오래 전, 이 다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던 그 날도 이랬던 걸로 훈은 기억한다. 붉은 기를 지닌 석양빛조차도 그를 물들이지 못했었다는 것까지도. 태양이 안토닌의 볼을, 머리카락을, 어깨를 쓰다듬던 날이 떠올랐다.
별도 뜨지 않은 밤을 어슬렁거리면서 괜찮은 상대를 물색하던 훈은 센느 강에서 조심스럽게 시체를 뉘이던 안토닌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우습게도 운이 굉장히 좋았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보지도 못했을 거리였고, 주변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신중하고도 신중한 행위. 마음에 드는 사람 하나 보이면 몸을 섞으면서 야금야금 빨아먹는 자신과는 다른 모습. 흥미가 일었다. 하지만 그게 끝. 훈은 어느 날, 떠나기로 결정했고 안토닌에게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약속했다. 그 날이 이제야 올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서로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정도로 감정적인 유대를 이루었냐고 누가 묻는다면 훈은 애매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눈썹을 살짝 늘어뜨린 채 입꼬리를 둥글게 만, 곤란한 표정. 안토닌은 예전부터 너무 어려운 존재였다. 타인에게 “친한 친구”라는 호칭을 붙일 정도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아니었고, 자기 생각을 나눠야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하지만 안토닌이 죽지 않았으면 하냐는 질문을 한다면 아마 그렇다고 즉답했을 것이다. 자기처럼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튕겨져 나간 존재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안타까웠다.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걸 의무라고 생각한 건지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것인지 익숙하게 다리를 서성이는 발걸음이.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채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몸을 기댄 다리에서 타고 올라오는 냉기가 시리다. 훈은 커피를 양손을 붙잡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겨울로 옮겨가는 공기 속에서 하얗게 입김이 피어올랐다.
“..온몸으로 ‘나 건드리지 마’라고 하네.”
피식 웃으며 그가 말을 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나, 인간이 좋아.”
뜬금없이 툭 내던진 말이 센느 강에 떨어져 출렁였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도 좋아했지만, 지금 인간이랑 사귀고 있어.
“사랑.. 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야.”
안토닌은 자기 옆에서 앞만 바라보는 남자를 흘깃 쳐다봤다. 검은 머리카락 아래에 자리 잡은 눈동자는 예의 인간을 생각하는 건지 부드럽게 풀려있었다.
그는 변해있었다.
손에 쥔 종이컵을 잠시 만지작거리던 그는 남은 커피를 한번에 들이키더니 안토닌을 바라보고 웃었다. 같은 강물에 절대로 두 번 다시 발을 담굴 수는 없잖아. 후회하고 싶지 않아.
“음.. 그러니까, 너도..네 삶을 살아.”
‘이렇게’ 됐다고 그냥 권태롭게 살지 말고 뭐라도 하는 걸 추천한단 거야. 이렇게 라는 말을 할 때 손가락으로 따옴표를 만들며 훈이 말했다. 농담처럼 어깨를 으쓱인 그는 이내 차분한, 그리고 미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다음에 만날 때에는, 변해 있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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