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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가_버려진_감정과_기억을_모아_보석으로_만드는_보석상의_주인이라면

 

가게 안은 교회에서 보던 스테인드글레스 같았다. 물로 그것보다는 작은 빛깔이었지만 소년은 교회보다도 훨씬 예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그 가게에 갔을 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이나, 정교하면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보석들을 보고 가게주인분은 얼마나 예쁜 분이실까 착각하기도 했다. 정작 주인이 되는 사람은 새빨간 머리에 인상을 쓰는 아저씨였지만 말이다. 항상 불퉁한 목소리로 적당히 하라고 하지만 사실은 구경도 시켜주는 아저씨.

 

달그락

 

유리로 만들어진 긴 막대끼리 살짝 부딪치는 소리가 나자 조금 움찔한 소년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태혁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듯 했다. 붉은 머리 아래로는 집중하느라 구부린 등과 팔꿈치까지 말아 올린 소매 사이로 보이는 팔이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어떨 때는 느긋하게, 어떨 때는 조금 빠르게. 여전히 자신을 향해 등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 안심한 소년은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반짝이는 돌을 손에 넣었다. 시설에서는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혼쭐이 났었다. 아저씨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음성이 머리 한 구석에서 들렸지만, 어른들은 믿을 만한 게 못되니까. 투명한 보석을 가볍게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빛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무늬를 자아냈다.

 

", 그거 조심해라."

 

아직 다 안 다듬은 거야. 퉁명스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는 화들짝 놀라 두 손을 가슴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한 태혁은 긴장에 굳은 어깨를 보지 못하고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분명 날카로운 부분이 남아있을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 자체였으니. 굳은살이 이곳저곳 박혀있는 자신과는 다르게 연약한 아이들의 손에 들어가기에는 지나치게 매섭다.

 

한동안 작은 광물에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목덜미가 뻐근해졌다. 태혁은 허리에 양손을 갖다대 묘한 소리를 내면서 등을 주욱 폈다. 몇 시간 동안 다듬은 기억을 잠시 살펴보았다. 어린 시절, 처음 맛보는 솜사탕. 새털처럼 가벼운 솜사탕이 입 안에서 녹으면서 퍼지는 달콤한 맛, 그리고 진득한 향. 조금 끈적해지는 손가락까지. 당사자는 기억조차도 하지 못해서 태혁이 여러 번 환기한 덕분에 생각났던 것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사소하기 짝이 없는 기억이었겠지만 태혁은 그런 기억들이 좋았다. 누구나 다 그렇게 평탄한 시절을 보낼 수 없는 일이니.

 

태혁이 손가락 사이에 달라붙은 가루를 조금 털어내다가 앞치마에 손을 감싸고 몸을 돌렸다. 두 주먹을 가슴에 가까이 가져간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바라봤다. . 짤막한 한 마디와 함께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린 태혁은 소년이 멍하게 고개를 젓는 모습을 쳐다봤다.

 

"아님 말아."

 

허리 뒤에 묶인 매듭을 풀고 검은 앞치마를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놨다. 아이는 꿈에 깨어난 듯한 얼굴로 손안에 꼭 쥐고 있던 보석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달그락. , 그게 그 소리였나 보네. 조금 전에 들었던 소리와 비슷한 울림이 들리자 의자에 몸을 던지며 태혁이 속으로 생각했다. 보석을 손에서 내려놓은 아이는 낮은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앞치마를 걸쳐놓은 의자에 가까이 다가갔다.

 

"우와.."

 

우주 같아요. 잠시 단어를 고르기 위해 말을 멈춘 소년은 입을 열었다. 검은색 바탕에 흩뿌려진 여러 색의 보석 가루. 언젠가 도서관에서 본 우주를 닮아있었다. 아저씨는 별을 만지는 거네요? 태혁의 손가락에 아직 남은 반짝임을 눈여겨보더니 덧붙였다. 어린애다운 발상이네. 가볍게 생각한 태혁이 건조하게 웃었다. 아이가 신이 나서 조잘거리는 음성을 배경 음악 삼아 듣던 그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너 이제 슬슬 갈 시간 아니냐?"

 

아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는 걸 보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금만 더 놀면 안 돼요? 눈 안에 가득 아쉬움을 담아 자신을 쳐다보는 얼굴에 마음 한구석이 찔려왔지만 태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겉옷을 건네주었다. 안돼. 그렇게 되면 넌 다음에는 못 놀러와.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내쉰 후 손에 코트를 들었다. 태혁이 무릎을 굽혀 아이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다가 문득 생각났는지 잠시 기다리라고 일러주곤 가게 뒤쪽으로 걸어갔다.

 

"이거."

 

양손을 펴라고 하더니 손바닥에 하얗게 빛나는 둥근 돌을 하나 얹었다. 그때 예쁘다고 했잖아? 가져가. 자신의 눈을 의심한 소년은 영롱한 보석과 태혁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한 손으로 볼을 야무지게 꼬집었다. 붉게 부은 볼과 저릿하게 퍼지는 통증.

 

"..진짜요?"

". 비싼 거니까 가는 길에 떨어뜨리지나 마."

 

주머니에 넣었다간 나중에 잃어버린다. 머쓱해 하며 머리를 긁적이던 태혁은 경고조로 한 마디 덧붙였다. 아이는 그 말도 들리지 않는지 오른손에 돌을 꼭 쥐더니 환하게 웃으며 태혁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 ."

 

갑자기 소년이 자신의 배에 얼굴을 묻자 당황한 태혁은 얼떨결에 마주 안으며 작은 뒤통수를 쓰다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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