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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온통 빛으로 차있는데도 이렇게 절망스러울 수 있구나. 로버트 그레이엄은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핀더파이어, 악마의 화염은 기이할 정도로 큰 불덩이를 토해냈다가 이내 불로 된 짐승으로 모습을 변모하고 있었다. 뱀처럼 벽을 길게 훑어가는 모습도, 불꽃으로 만들어진 용이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모습도 보고 있던 로버트는 문득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떨궜다. 아. 그제야 망토에 불이 붙었다는 사실을 눈치 챈 그는 가벼운 손놀림으로 망토를 벗어냈다. 어차피 소용도 없는 것. 핀더파이어에 닿은 것은 무조건 재로 돌아간다.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붉은 꽃.
물방울 하나가 또르륵 떨어지자 그는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비볐다. 연기 때문에 눈이 매워서 그런가보다. 아무도 듣지 않을 변명은 웅얼거림이 되어 공기를 태우는 불꽃소리에 사라졌다. 아래로 추욱 늘어지던 망토를 벗었음에도 팔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떨리는 손끝을 뻗어 붉게 빛나는 빛에 갖다 대자, 불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화끈거림을 넘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린 감각에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지만 핀더파이어는 그 발걸음조차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잠식해왔다. 소매를 태우고 피부가 눌러붙고 근육이 익어가는 감각이 비현실적이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어쩌면 죽음만이 구원이라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핀더파이어가 밝은 옷자락을 펼쳐서 로버트를 완전히 감쌀 때가 되자, 그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그 품 안으로 녹아들어갔다.
“안녕, 나를 구원으로 인도해줄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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