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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으로 눈을 찌푸리며 대니얼은 자신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너무 한가하게 지내왔던 탓일까. 뒤에서 다가오는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당해버렸다. 자신에게 칼을 겨눈 그 사람은 숲을 혼자 다니는 여행객들의 뒤를 노리는 강도인 듯했다. 하찮은 좀도둑이라는 건 단검이 등을 파고들었음에도 저항하고 견딘 대니얼을 보고 사시나무 떨듯이 흔들리던 남자의 동공에서 알 수 있었다. 경험도 부족한지 망토에 가려졌던 대니얼의 체격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기도 했고. 아마 칼에 찔리고도 거세게 저항하는 사람을 본 적이 지금까지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 위협하기만 해도 창백해지면서 투항하니. 하지만 대니얼은 누구를 해치기 위해 어떤 각오가 필요한지 아는 사람이었고, 그 남자는, 비록 칼을 들고 타인을 해치려고 했어도, 그걸 모르는 놈이었다.
대니얼은 남자가 막무가내로 후벼놓은 상처에 한 손을 올려놓고 나무에 기댄 채 휴식을 취하면서 떠올렸다. 사실 그 강도를 끝까지 쫓아가서 다시는 이런 짓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기에는 피를 이미 많이 흘렸다. 아쉬움에 혀를 쯧 차며 다른 손으로 이마에 빛나는 식은땀을 훔치고 대니얼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더 걸어갔을까. 출혈로 흐릿해지는 초록색 눈동자의 끝자락에 빛이 보였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것과 같은 햇빛일테다. 숲을 벗어나면 마을에서 도움이라도 청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대니얼은 곳곳에서 비명 지르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더 주었다. 결국 빛에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의 무릎이 풀썩 꺾였다. 분명 얼굴을 맨바닥에 아프게 부딪힐 거라는 생각에 대니얼은 저도 모르게 다가올 고통에 대비해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이빨 사이를 파고들 껄끄러운 흙의 맛과 눅진한 먼지 냄새를 예상했으나 볼을 간지럽히는 건 시원한 부드러움이었고 코끝을 맴도는 건 은은한 향기였다. 피곤함에 무거워진 눈꺼풀을 살며시 들자 시야를 물들이는 건 아찔해질 정도의 노란빛이었다. 꽃잎의 싱그러움이 볼을 시원하게 만들어주자 대니얼은 의아함에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래도 밀밭이 아니라는 거에 감사해야하는 걸까. 멍한 머리로도 실없는 생각이 스쳐지나가서 어이없음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폐가 바짝 조이면서 웃음을 쏟아내자 상처가 벌어지면서 신음소리가 잇새로 새어나왔다. 축축한 물기와 함께 스며 나오는 비릿한 냄새에 대니얼은 상처 부근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어쩌면 칼을 뽑지 않은 쪽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숲속에서 버렸을 칼을 다시 가져오기에는 이미 늦었다. 손바닥을 적시는 온기에 그는 기운 없이 늘어진 팔을 들어올렸다.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가락 끝에서부터 손바닥까지 물들이고 있는 붉은 색. 아직 산화작용조차 시작되지 않은 신선한 피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핀 황금빛 꽃잎,
여섯 개인가? 아니, 꽃잎이 떨어져서 망가진 걸 감안하면 일곱 개일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있는 꽃이 여섯 개인지 일곱 개인지 확실하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흐려졌다. 그럼에도 대니얼은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을 했다.
‘꽃밭에 누운 채 잠들다니, 분수에 안 맞는 호사네.’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자 손가락에 걸려있던 노란 꽃잎들이 온전히 손 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아닌 거였지만 새끼 손톱만한 꽃잎들이 아기자기해서 괜시리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우선 피곤하니까 한 숨 자고 고민해야겠다. 지나치게 느긋한 생각이 아닐 수 없겠지만 대니얼은 꽃으로 된 이불 위에서 잠을 자는 호사를 누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풀냄새와 뒤엉킨 꽃향기가 기분 좋을 정도로 코를 간지럽혔다. 두 눈을 감은 채 엎드린 대니얼의 밀짚색 머리카락을 어디선가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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