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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최근 잇따른 임무들로 지친 신체는 휴식을 갈구하고 있었건만 그는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머리에 닿은 베게의 감촉도, 몸 아래에 짓눌리는 매트리스와 시트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다가왔다. 평소라면 짐을 부드럽게 잠으로 이끌어줄 엔터프라이즈의 엔진소리마저 도와주지 못했다.

결국 그는 억지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어둠속에서 확실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책상 위에 놓여있을 서류를 떠올리며 시선을 옮겼다. 잠도 안 오는데 차라리 서류나 처리할까. 머리 한 구석에서 말도 안된다고 스스로를 비웃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정도로 절실했다. 끝없는 활자들의 나열에 집중하면 어느 순간 잠에 들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은 채 고민하던 짐의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수면을 취할 수 없습니까, .”

 

짐이 아니라면 모를 정도로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스팍이 물어봤다. 하지만 살짝 잠겨있는 목소리와 본드를 통해서 타고 들어오는 감정덕분에 짐은 미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미안해, 스팍. 내가 깨웠어? 스팍은 작은 소리를 내며 짐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 물론 스팍이었다면 벌칸들은 목덜미에 고개를 묻지 않습니다. 라고 했겠지만. “일로지컬하니까. 짐은 자기 생각에 키득이며 자기 허리에 올려져있는 손을 붙잡고 깍지를 끼웠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새털같이 가벼운 손길로 스팍의 손바닥을 쓸어내리면서 소곤소곤 말했다.

 

낮에 먹은 커피 때문인가..”

카페인의 과다섭취는 숙면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겨우 한 잔이었는걸. 그리고 정말 필요했단 말이야. 본즈는 레플리케이터로 만든 커피 따위는 진짜 커피가 아니라고 하지만 짐은 나름대로 따뜻한 온기와 향기를 재연한 걸 마음에 들어 한다. 애초에 까다로운 입맛인 것도 아니고, 카페인 섭취가 목적이었으니까. 하얀 머그컵에 담긴, 짙은 갈색의 액체를 홀짝홀짝 마시는 자신에게 느끼는 스팍의 걱정스러운 감정이 흘러들어오는 걸 느꼈었지만 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후회는 비논리적입니다.”

 

짐의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감싸며 스팍이 말했다. 처음에는 괜한 트집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부담을 지우려고 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짐은 눈매를 곱게 접었다. 인간에 비해 신체적인 능력이 월등한 벌칸인의 눈은 어둠속에서도 그 푸름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엔터프라이즈의 워프코어를, 우주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지구를 닮은 짐의 눈동자. 무채색의 벌칸인들과 다르게 화사한 빛깔이 눈부실 정도라고 무심코 생각했었다. 스팍은 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그의 눈매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멜딩 포인트를 스칠 때에는 아찔할 정도로 손가락을 자극했지만 스팍은 이내 차분하게 짐의 손을 잡았다.

 

눈을 감으세요, T'hy'la.”

 

영어와는 이질적인 발음이 스팍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후 짐은 얌전하게 눈꺼풀을 내렸다. 나비 날개처럼 팔랑이는 그의 속눈썹이 자리를 잡자 스팍은 맞닿은 손가락으로 천천히 문지르면서 수면 유도 전류를 흘려보냈다. 이론적으로 너브 핀치와 비슷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상냥한 감촉이었다. 짐은 자기도 모르게 몸에 힘이 풀리고 가라앉는 느낌에 스팍에게 편안하게 몸을 맡겼다.

 

“...잘 자, 스팍.”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보기 좋게 휜 미소에 작게 응한 스팍이 답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

 

사막의 강한 햇살이 부재한 우주는 벌칸에 비해 터무니없이 차가웠다. 엔터프라이즈호 안에서도 스팍은 언제나 얇은 방한복을 받쳐 입는다. 그는 반쯤 잠이 든 짐을 품에 가까이 끌어당겨 온기를 만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누워있는 인간의, 비효율적일 정도로 내뿜는, 따뜻함에 젖어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견뎌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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