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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하루 하나

2019.03.26

잡초양 2019. 3. 26. 23:47

 

저 멀리, 당신이 있다는 걸 알아요. 저기 달 말이에요. 거기에 있는 거 맞죠? 나도 알아요. 우주에는 공기가 없어서 내가 여기서 아무리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는 걸. 그래도, 만에 하나 그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상식이 틀렸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달로 이주하는 걸지도 모르잖아요. 그래도 난, 당신이 돌아왔으면 해요.

 

미안해요.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요즘 사람들이 뒤에서 내 얘기하는 게 많이 들려요. 젊은 여자가 미쳐버린 거 아니냐고. 재미있더라고요. 내가 웃으면서 인사하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날씨얘기나 하고. 하지만 그 사람들은 틀렸어요. 난 어느 때보다 지금 제정신이에요. 두 달 전보다 훨씬, 훨씬 더 세상을 또렷하게 보고 있어요. 그리고 모든 걸 다 포기한 채 하루 종일 울기만 한 내가 한심하면서도 가엽고요. 아니, 근데 당연하잖아요? 당신은 내 전부였는걸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내 곁에 없죠.. , 창문이!

 

이 창문은 가끔 자기 맘대로 열린단 말이에요. 아무튼, 당신한테만 말해주는 비밀인데, 별빛이 우리 방을 비치는 밤이 되면 나는 이런저런 소리에 귀 기울여요. 그게 짝을 열심히 부르는 귀뚜라미의 연주소리일 때도 있고 바람이 잔디 사이를 내달리면서 내는 웃음소리일 때도 해요. 우리가 자주 걷던 호숫가, 그 쪽에 요즘 갈대가 자라고 있어요. 가끔 당신이 반바지 차림으로 걷다가 종아리를 베이곤 하던 거기.

 

오늘도 잘 자요 당신. 그 곳에서 내가 당신에게 말을 걸듯이 내게 말을 걸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 날, 그 날이 오면 나한테 다시 이야기를 들려줘요. 이건 리허설이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더 잘하기 위한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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