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중력이었습니다. 달에 공기가 없는 이유는 중력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아니 중학교 때였나? 아무튼 과학 시간에 지나가듯이 언급하는 토막 상식. 시험에는 달이 시간에 따라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왼쪽이 통통한 게 상현달인지 하현달인지-나왔지만 나는 그 문장을 제법 곱씹어보았어요. 인간은 지금까지 언제나 중력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해왔음에도 결국 그 중력덕분에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지독한 블랙 코미디의 일부만 같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당신은 나의 중력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장대 높이뛰기를 하는 선수들에게 중력은 이겨 내야하는 대상이지만 무사히 땅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듯이, 당신의 슬하에서 자란 나는 항상 당신을 이겨먹고 싶어 했으니까요. 중력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너는 나의 중력이었다.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주위를 맴돌던 그 힘은 내가 땅에서 아주 살짝, 뛰어오를 때마다 무한한 뿌듯함을 느끼게 했고 이 정도면 됐다고 만족하게 만들었다. 그 만큼 했으면 됐지. 네 능력으로는 이런 결과도 대단한 거야. 그러니까 적당히 하자. 온 힘을 다해서 뭐해? 너는 나를 위한답시고 달콤한 말을 속삭였지. 그 말의 달콤함이 내 발목 주변에 끈적하게 달라붙기 시작한 걸 깨달을 때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함정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혀끝에 맴도는 감각은 강렬했기에. 네가 사라진 다음에야 내가 스스로 걸어 들어간 늪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가만히 있을 땐 안락하지만, 움직이려고 할 땐 조금씩 나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그 늪. 하지만 날아오르지 못하게 내 날개를 움켜쥐던 너는, 내 한..
배 아파. 배 아파. 배 아파. 내장을 쥐어짰다가 안쪽에서 늘어나는 것만 같은 통증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긴장할 때마다 겪는 고통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 그러니까 뭣도 모를 때에는 하루하루가 행복해서 모르고 있다가 조금씩 나이를 먹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되는, 그런 흔하디 흔한 이야기. 그럴 거면 좀 더 평범하게 위염이라든지 손에 땀이 유난히 많이 찬다든지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로 했으면 오죽 좋아. “우읍..” 헛구역질이 올라오자 나는 반사적으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위(胃)에서, 목구멍에서, 입 안에서 꿈틀거리는 감각을 어떻게든 다시 억누르려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