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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지점 접근”


 아이델라의 차분한 목소리가 인이어를 타고 귓가에 내려앉았다. 알겠다. 호레이쇼는 귀를 살짝 누른 채 답했다. 그리고 헬멧을 쓰기 전 숨을 고르고 있던 엠마의 어깨에 손을 툭, 얹었다. 보색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눈이 시리고 눈물이 촉촉하게 고일 때까지 엠마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긴장되나? 노인이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그럴 리가.”


 씹어뱉듯이 답한 엠마는 타오르는 불꽃같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거짓말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누구나 이 정도 높이에서 천쪼가리 하나에 의지한 채 착지하는 상황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 1000 피트에는 낙하산을 펼쳐야할 거다. 그리고..”

“네, 네. 알아요. 너무 일찍 펴면 타겟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고 레이더에 감지된다고요. 이 훈련의 목적은 레이더에 감지되지 않고서도 목표에 도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에 있다고요. 그러니까 헬멧에는 디스플레이가 없고 저는 아이델라씨의 신호에 맞추면 된다, 고요.”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몇 번이고 입안으로 굴렸던 대답을 늘어놓으며 엠마가 초조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옭아매는 수트며, 양 손으로 꽉 붙잡고 있는 헬멧도, 하나로 묶은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흩어뜨리는 바람까지, 모든 게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호레이쇼는 자기 말을 중간에 끊은 엠마에게 별 말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으며 말했다. 


“수고해라.”


 수상하긴. 헬멧을 머리 위로 뒤집어쓰며 엠마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신호를 보내고 바람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뒤 돌아본 그녀의 시야에는 엠마가 정말 싫어하는-볼 때마다 짜증이 확 솟구친다.-호레이쇼가 꿍꿍이를 벌일 때마다 짓는 표정과 그의 손에 들려있는 인이어가 들어왔다. 


“이 미친..!”


 할배가! 헬멧 안에 닿지 않을 목소리로 가득 차 이리저리 반사되어 귀를 울렸다. 엠마는 반사적으로 자기 얼굴 옆을 더듬었지만 헬멧의 매끄러운 표면만 손바닥에 잡혔다. 목구멍까지 욕지기가 차올라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낙하산 손잡이를 붙잡은 엠마는 습관적으로 잡아당기려는 손을 막았다. 정신 차려, 엠마 스탈링. 지금 펴면 안 돼. 이를 악 물자 어금니에서 턱까지 둔통이 퍼졌다. 지금은 아이델라씨의 도움 없이 낙하산을 제때 펼쳐야 했다. 물론 이 높이에서 펼친다면 안전하게, 천천히 땅에 닿겠지만 엠마는 그 선택지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눈앞에 호레이쇼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름진 얼굴에 한가득 비웃음을 담을 스승의 생각에 엠마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역시 너에게는 아직 이르구나. 인이어를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다니. 쯧쯧, 하며 혀를 차는 소리는 덤으로 따라붙을테다. 


“빌어먹을 노인네! 엿이나 처먹어!”


 들리지 않을 욕설과 허공에 중지 손가락을 펼친 그녀는 눈을 감고 온몸의 감각에 집중했다. 자신의 몸무게와 바람의 저항, 속도까지 계산한다면 대충 비슷하게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한참-어쩌면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동안 엠마는 휘몰아치는 바람에서 점점 빨라지는 자신의 심장소리에 귀 기울였다. 떨리는 손을 가다듬고 속으로 10초를 셌다. 그리고 2까지 세고 낙하산 손잡이를 세게 잡아당겼다. 낙하산이 펼쳐지면서 커다란 천이 바람을 한껏 머금어 부풀어 올랐다. 자기를 위로 끌어당기는 듯 한 힘에 억,하고 숨 막히는 소리를 낸 엠마는 매 초마다 다가오는 잔디밭을 마지막 순간까지 주시했다. 


 발이 잔디밭에 닿자마자 다리에서 힘을 빼고 몸을 둥글게 만 그녀는 한두 바퀴 정도 잔디 위를 굴렀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에 물기가 고이면서 시야가 흐리해져 떠다니는 구름들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아직 아니야.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인 엠마는 무릎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키고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자기 무게에 짓눌린 풀들이 내는 향기를 온 몸으로 들이마셨다. 아직도 흥분감과 분노, 공포에 바들바들 떨리는 양 손이 헬멧을 들고 있다가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본인의 귀에 있었어야 할 인이어였다. 


 허탈한 숨결을 내뱉고 조그마한 기기를 두 손가락사이에 굴리다가 스위치를 켜고 귀에 꽂았다. 


“..마!..찮아요?”

“괜찮아요..”


 어딘가에서 주저앉아 베개에 깃털이 날리도록 주먹을 내지르고 싶었다. 아니면 36시간동안 방해 받지 않고 잠자거나. 엠마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질문을 쏟아내는 아이델라에게 착실하게 대답했다. 왜 이런 사람이 호레이쇼 스탈링과 함께 일하는 걸까. 아닙니다, 팔 다리도 멀쩡하고 맥박수도 괜찮아요.


“갑자기 통신이 꺼져서 놀랐어요. 최후의 수단으로는 선생님이 원격으로 조종하려고 했어요. 그럴 일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잘 했어요!”


 엠마는 앞니로 입술을 꽉 깨워 쏟아지려는 욕설을 집어삼켰다.

 

 재수 없는 노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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