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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학생AU
지클린데를 제외한 다른 환자가 없는 병실에는 이따금 흔들리는 커튼의 펄럭임과 책장 넘기는 소리만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평소에는 하나로 묶어 올렸을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지클린데는 목뒤에 닿는 감촉이 어색했는지 손으로 뒷목을 매만지곤 했지만 침묵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이 상황이 싫지 않았다. 개인실이 좋긴 하구나. 속으로 생각한 그녀가 간만의 고독을 만끽하려는 때..
“지크!”
다리 부러졌다며! 그 고요를 산산조각 부숴버리며 래리 로젠버그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리저리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핑크색 머리카락하며 노을을 머금은 눈동자. 붉은기가 도는 적갈색 머리카락인 본인도 나름 눈에 띄는 머리색인데 그의 옆에서는 보이지도 않겠다고, 실없는 생각을 하던 지클린데는 시니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다리에 땀 채우고 싶어서 석고본 떴어.”
사실 다리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다쳤지만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자기 평화를 철저하게 깨부순 불청객에게 삐뚜름한 미소를 보냈다. 하하, 농담하고는. 비아냥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래리가 가볍게 손에 든 바구니를 흔들며 다가올 때마다 발 아래로 침묵의 조각들이 파삭거렸다. 지클린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고요함을 아쉽게 바라봤지만 이내 읽고 있던 책을 옆의 탁자에 내려놓았다. 래리가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자기 왼쪽에서 바구니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거 뭐야.”
따사로운 햇살을 가득 머금은 듯이 윤기 나는 사과 두어 개를 꺼내드는 래리에게 핀잔을 날렸다. 한동안 유동식을 먹어야하는 처지인데 뭔 과일. 툭 던지는 지클린데의 목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자기 셔츠에 사과를 슥슥 닦던 래리는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는 회색 시선을 향해 씨익 웃었다.
“나 먹으려고 가져 온..억!”
래리에게는 불행하게도 지클린데의 팔은 멀쩡했기에 응징의 주먹을 피할 길이 없었다. 요상한 신음을 낸 그가 의자에 쪼그려 앉아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문질렀다. 팔을 휘두르느라 상체를 움직인 지클린데도 슬금슬금 올라오는 둔통에 끄으응하고 베개에 뒤통수를 묻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뜨끈미지근한 짜증을 꿀꺽 눌러 삼키고 미간을 찡그렸다.
“야, 그러다가 주름 생긴다?”
깐족거리기는. 지클린데는 왼쪽 눈동자를 굴려 어느새 아픔이 가셨는지 과도-설마 챙겨 온거냐,-로 솜씨 좋게 사과를 깎기 시작하는 래리를 쳐다봤다. 언제쯤 퇴원하는데? 삼주는 있어야한다고 하더군. 흐응~ 빨간 껍질을 부분적으로만 잘라 토끼 귀 마냥 뾰족하게 세우는 데에 신경을 쏟는 그는 길게 말끝을 늘어뜨리다가 이런 저런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대부분 지클린데가 입원한 동안의 이야기였다. 수업이 어쨌다니 교수가 어쨌다니, 전공 수업 필기는 자기가 빌려줄 테니 술이라도 한 잔 사라-지클린데는 시원하게 뻗은 중지 손가락으로 답했다-든지. 지클린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래리 로젠버그를 거치지 않는 소문이 없는 모양이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말이 병실 천장까지 차오른다는 상상을 하다가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하던 그 때, 지클린데는 자신을 쿡쿡 찌르는 바나나에 눈을 흘깃 돌렸다.
“이거 봐 지크! 토끼 가족이야.”
의외로 정갈하게 토끼 모양으로 깎은 사과가 옹기종기 접시 위에 모여 있었다. 접시를 작은 탁자위에 얹은 래리는 자신의 임무를 다 했다는 뿌듯한 얼굴로 책-지클린데가 읽고 있던 그 책-을 휘리릭 넘기고는 말했다.
“조금 자지 그래? 같이 있어줄게.”
너 없이도 잘 잔다고 말하려다가 지클린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의외로 래리가 조용하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수마의 늪에 잠겼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커튼이 살랑일 때마다 일어나는 바람. 다시 한 번 고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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