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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기사는 틈 하나 보이지 않는 갑주로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투구 아래로 보이는 아래턱이 단단하게 굳어있었고, 동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들키지 않길 바라며 살금살금 다가갔다.
“지크.”
꼿꼿하게 서있는 기사를 폭 찌르며 내가 속삭였다. 근엄한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우리 가문 이름이 울겠지. 다시 한 번 지클린데를 찔렀다. 손가락 끝이 단단한 강철에 닿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 느끼질 못하는 건가 싶어서 주먹으로라도 쳐야하나 싶던 찰나에, 방패가 매섭게 땅에 꽂히며 슬금 뻗어나가는 팔을 제지했다.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방패는 마치 삽처럼 흙바닥을 깊이 뚫었다. 일초만 늦었어도 손이 저기에서 나뒹굴 뻔했다는 생각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야, 너무하지 않냐? 팔 잘릴 뻔했잖아! 지클린데에게 속삭이는 목소리-하지만 최대한 섭섭함을 담으며-로 말했다. 지크가 작게 코웃음을 치는 듯 하더니 비슷하게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도 안 잘렸잖아?”
참나. 지클린데 옆에 털썩 주저앉으니 흙먼지가 공중에 피어올랐다. 일부러 살기를 싣지 않은 것도, 지크는 내가 피할 수 있음을 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스럽지 않았다. 우리끼리의 농담..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 친구 맞지, 지크? 라며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고 싶은 충동을 머리 구석으로 치운 후 내가 정강이부분의 갑주를 손톱으로 톡톡 쳤다. 강철이 울리는 낭랑한 소리가 들렸다. 투구 아래에 있을 지클린데의 짙은 시선이 뭐하냐는 눈빛이 물어봤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너 근무 끝나면 ‘즐거운 납세자’에나 가자.”
내가 살게. 훈련생이었던 시절부터 자리를 지키던-어쩌면 더 오래됐을지도 모르겠지만-펍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항상 갈 때마다 자신에게만 술을 먹이고 인사불성인 친구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리는 지클린데였지만 같이 잔을 맞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뻣뻣하기 그지없는 친구를 유연하게 만드는 재주는 나에게 없는 대신 가만히 듣는 데에는 자신이 있다. 특히 오늘은 선배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서 추가 근무를 하고 있는 날이니까.
지크와 대련할 때면 세상의 불합리를 응축해서 본 기분이 든다. 안대로 가려져있을 시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생적인 근력차이도 관계없이 들어오는 지클린데의 공격은 겨울 돌풍보다도 매섭고 날카롭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공연한 꼬투리를 잡는 선배들의 옹졸함에 속이 꼬이기도 한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지클린데는 그런 사람과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그저 깎아내리기에 바쁘고 짓밟고 싶어 안달인 사람들한테 지크가 질 리가 없으니까. 나는 자랑스러운 친구의 뒤를 따라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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