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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빌로시티의 그 더러운 뒷골목에서 나에게 손을 내민 그 순간부터, 나는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유리창 너머로 은은하게 반짝이는 눈발이 짙푸른 밤하늘을 수놓았다. 복소복 쌓이는 하얀 눈을 바라보던 흑색 양갈래의 소녀는 창문에 바짝 달라붙었다. 입을 살짝 벌려 하-하는 소리를 내자 투명한 유리가 뿌옇게 물들었다. 손가락을 살포시 얹어 움직이자 물기 어린 흔적이 별을 그려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물빛의 소녀는 붉은 눈동자로 이를 따라 움직이다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옆에 얹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얼굴로 한참을 머뭇거린 아이는 흩어지는 뿌연 기운을 안타깝게만 바라봤다. 미묘한 표정변화를 알아차린 마를렌이 살짝 젖은 별을 제외하고는 투명해진 유리에 다시 입김을 내었다. 마를렌의 숨결에 피어난 하얀 흔적을 보고 샬럿은 배시시 웃었다. 두 소녀는 차가운 유리창에 따뜻한 온기로 암호를 그리다가 문득 문쪽에서 들리는 왁자지끌함에 고개를 돌렸다.

 

"크리스마스 트리 꾸밀 시간이다, 꼬맹이들아!"

 

빨간색 바탕에 가슴을 가로지르는 초록색 무늬의 스웨터를 입은 드렉슬러가 상자를 안은 채 문을 발로 열며 크게 선언했다. 마를렌은 허리에 손을 짚으면서 그렇게 크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며 아저씨는 동작이 너무 크다는 핀잔을 주고 그런 말을 흘려듣는 듯한 드렉슬러의 모습에 샬럿은 작게 키득거렸다. 얼마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지만 언젠가부터 익숙해진 풍경. 가슴에서부터 따뜻함이 가득 차올랐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벽난로의 따뜻한 기운이 방 안을 어루만졌다. 카페트에 무릎을 댄 채 앉은 마를렌의 뺨이 온기에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샬럿에게 동그란 전구를 닮은 장신구를 건네받으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 샬럿은 산타 할아버지 몰라?"

 

놀란 마를렌의 말투에 샬럿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를렌이 손을 움직이자 푸른 이파리를 뽐내고 있는 작은 전나무에 둥근 장식이 달렸다. 겨울 즈음에 작은 전나무에 장신구를 이리저리 다는 건 자주 봤지만 마를렌이 설명하는 그 할아버지에 대한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풍채 좋고 빨간 옷을 입은, 하얀 수염을 단 할아버지가 하룻밤만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착한 아이들만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샬럿은 손에 든 천사 모양의 장신구를 만지작거렸다. 착한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은 한번도 그 분을 뵐 수 없었던 걸까.

 

", 그래서.. 잔뜩 선물을 실은 썰매에는 코가 빨간 아이가 있는데.."

 

샬럿에게서 받은 천사 장신구를 걸면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득 실은 썰매를 끄는 순록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려던 마를렌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고개를 숙인 샬럿은 말없이 손가락만 조금씩 움직여서 다른 장신구를 만지고 있었다. 그런 샬럿의 정수리를 눈여겨보다가 마를렌이 헛기침을 하다가 자신만만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근데 산타 할아버지도 실수 할 때가 있겠지!"

 

고개를 든 샬럿의 얼굴이 의아함에 물들자 마를렌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을 이었다. 샬럿은 분명히 이사를 자주 가서 산타 할아버지가 한발씩 늦은 걸거야! 눈꼬리를 곱게 접으며 웃자 양쪽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올해는 나랑 같이 여기 있으니까 꼭 받을 수 있을거야, 샬럿."

 

그렇죠, 드렉슬러 아저씨? 마를렌은 샬럿이 보지 못하도록 드렉슬러를 향해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그는 이해했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샬럿은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잘 모르겠어 언니. 소녀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연구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드렉슬러였다.

 

마무리로 별을 다는 영광은 샬럿에게 주어졌다. 까치발을 해도 닿지 않는 높이에 울상을 짓자 드렉슬러는 샬럿의 허리를 단단하게 쥐고 번쩍 들어올렸다. 트리의 상단에 가볍게 별을 얹자 마를렌이 손뼉을 마주쳤다. 그냥.. 별만 올렸는데.. 드렉스러의 품에 안긴 채 발갛게 물든 샬럿이 수줍게 미소를 보였다.

 

***

 

샬럿은 눈을 살며시 떴다. 고요함에 창밖으로 소복히 쌓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큰 의미를 부여한 적이 없었다. 골목길에서 혼자 떠돌아다니는 소녀, 그런 소녀에게는 한낱 기념일보다는 당장 먹을 식량과 안전한 쉽터가 더 중요했다.

 

'그래도..'

 

시트를 걷어내며 바닥으로 다리를 내렸다. 이제 조금쯤은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빌로시티에서 자신에게 건네진 손을 잡으면서 샬럿은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꿈을 품기 시작했다.

 

'항상.. 마를렌 언니와 같이 있고 싶어.'

 

부끄러워서 차마 입에 담기 못한, 이번 크리스마스에 샬럿이 빈 소원이었다. 비록 짧은 머리카락이었지만 양갈래로 묶은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 밖을 나섰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날이었으니까. 기대감에 움직이는 발이 더 빨라졌다. 발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카페트가 구름처럼 푹신하게 다가왔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을 알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나고 싶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벽난로 앞에 자리 잡은 마를렌의 꼿꼿하게 세운 등이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은 예의범절이 몸에 벤 모습이었다. 검은 뒷통수 양 옆으로 나온 양갈래 머리와 평소에도 즐겨입는 물방울 원피스. 그리고 그런 마를렌을 감싸는 따뜻한 온기가 빛나서 샬럿은 눈이 시릴 지경이었다. 언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던지자 조각같이 가만히 앉아있던 마를렌이 일어나서 뒤를 돌아봤다. 샬럿.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그 모습이 빌로시티의 그 날만큼이나 상냥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제 선물 뜯으러 가야지? 자신에게 다가온 하얀 손가락의 끝을 바라보던 샬럿은 마주 웃으며 손을 포개었다. . 언니랑은 어디에 가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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