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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는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로 떠날 사람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은 사람들. 여러 가지 목적들이 샐러드처럼 한 곳으로 엉켜있는 모양새였다. 감색의 어두운 빛깔로 가득한 뒤통수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인상적으로 큰 키와 옅은 푸른색의 머리카락은 어디에서나 주목 받을만 했다.
두근거린다. 정직은 서율이라는 두 글자가 써진 작은 플랜카드를 들고 뜀박질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자기도 모르게 발끝을 바닥에 톡톡 두들기며 그는 설렘과 긴장이 뒤엉킨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어서 보고 싶다. 미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안내가 나오자 정직의 심장은 더욱 빨리 뛰었다. 혹시나 자기가 그를 놓칠까봐 정직은 까치발을 선 채 게이트를 바라봤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그 사람들을 마중 나온 다른 이들을 만나 함께 공항을 나가는 것을 보면서 정직은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얼마간 지났을까.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흑발이 드러나자 그는 손을 높게 뻗어 우렁차게 외쳤다.
"율아!"
멀리서 들리는 이름에 율은 고개를 돌렸다.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유난히 돋보이는 하늘색 머리카락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직아. 한손으로 짐을 끌면서 다가오는 연인의 모습에 정직은 눈꼬리를 가늘게 접어 웃었다. 움직임을 따라 흔들리는 검은 머리카락, 부드럽게 휘어진 고운 입술,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담은 맑은 눈동자까지. 어느 부분 하나 보고 싶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손을 높이 붕붕 흔드는 정직이 귀엽다는 듯이 웃은 율은 한 손으로 긴 머리를 넘겼다. 살짝 까딱이는 고개,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머리카락. 그런 모습 하나 놓칠새라 정직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은 듯했다.
"보고싶었어..!"
작은 플랜카드를 가슴에 와락 안고 금방이라도 꼬리를 흔들 것만 같은 모습으로 정직이 소리쳤다. 보고싶었어 율아! 나도. 마주 웃은 율이 대답하면서 다가왔다. 서로의 눈동자에 상대방만이 비친 순간, 주변 세상이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둘은 점점 거리를 좁혀갔고 마침내,
팔을 둘러 포옹했다.
품 안에 들어오는 온기와 기분 좋은 향기에 정직은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미국 여행은 어땠어? 어깨에 얼굴을 묻느라 목소리가 조금 둔탁하게 들렸지만 율이 대답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의 허리를 조금 더 가까이 잡아당기면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정직의 어깨에 턱이 닿느라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들을 지나쳐가는 사람들 중에서 뒤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의 품에 안겨있는 지금만큼은, 다른 무엇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한참을 맞닿아있던 몸을 떼고 둘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얽혔다. 오랜만에 닿는 손바닥의 온기는 손가락 끝에서 부터 가슴 안쪽까지 따뜻하게 녹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