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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환!”
우가 멀리서 손을 흔들며 이환에게 다가갔다. 옅은 색의 머리카락이 뒤에서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백우씨.”
늦었습니다. 지금 몇 시인지 아십니까?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은 우에게 이환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핀잔을 주었다.
“사람이 좀 늦을 수도 있지. 어떻게 항상 딱딱 맞출 수 있겠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넘기려고 하자 이환이 입술을 떼려고 시작하려 했으나 우가 이환의 등을 툭 치면서 말이 끊겼다. 어쨌거나 지금은 축제 구경해야지! 발랄하게 말을 하고는 팔을 휘적거리며 앞장섰다.
의외로 많은 인파에 둘은 잠시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길을 잃어 서로 엇갈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환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턱을 살짝 안으로 끌어당긴 채 생각에 잠긴 이환의 시야에 우의 하얀 손이 담겼다. 손을 잡는 것이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었겠지만 우가 싫어할까 걱정되어 망설이고 있었다. 골똘히 생각에 빠진 이환은 자신을 바라보는 우의 시선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서있었다. 그런 이환을 보다가 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자 손을 덥썩 잡았다.
“이렇게 하면 되겠네!”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우는 이환의 손을 이끌고 인파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깔끔하게 묶인 이환의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면서 흔들렸다.
“백우씨, 풍등 만들 줄 알아요?”
축제 한 구석에서 풍등을 파는 가게를 보고 이환이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어봤다.
“..음?”
이환이 고개를 돌리자 양 볼이 볼록하게 나올 정도로 간식을 물고 오물거리던 우가 두 눈에 의문을 담은 채 자신을 바라봤다. 살짝 한숨을 쉬고 입가에 묻은 양념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주고 이환이 다시 물었다. 풍등 만드는 방법 알아요?
“아니.”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 입 안 가득 찼던 걸 삼키고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대답한 우의 눈에는 흥미로움이 빛나고 있었다. 왜?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주게? 이에 이환이 잠시 고민하다가 쑥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같이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해서 물어봤어요.”
우는 시선을 피하며 제안하는 이환을 보다가 활짝 웃으며 흔쾌히 대답했다.
“그래!”
“아, 모르겠다!”
풍등의 재료를 산 둘은 사람들이 가득한 시장을 나와 뒷산으로 올라갔다. 동화원 사람이라면 알만한, 하지만 외부인들은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다. 밝은 빛으로 가득했던 시장과는 달리 산은 어둠의 부드러운 치맛자락으로 둘을 덮어주었다.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뒤섞였던 곳과는 다르게 산에서는 우의 낭랑한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예상보다 풍등 만들기가 어려웠는지 고전하고 있는 눈치였다. 이환은 풍등, 이라고 하기에는 어설픈 물건, 을 손에서 놓은 채 드러누운 우를 바라봤다. 밝은 머리카락이 머리 주변에 흐트러지자 후광같이 빛나고 있었다.
“이리 주세요. 제가 할게요.”
손을 내밀어 우로부터 풍등을 받아든 이환은 능숙하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재료를 엮기 시작했다. 우는 짐짓 놀란 얼굴로 이환의 손길을 지켜봤다. 그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손가락을 움직이던 이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반듯한 모양의 풍등이 두 개 완성시켰다.
“이제 됐네요.”
이제 날리기만 하면 돼요. 뿌듯함에 엷은 미소를 머금은 이환의 얼굴을 우는 멍하니 보다가 잠에서 깬 것처럼 움찔거렸다. 어! 맞아, 풍등. 풍등 날려야지. 왜 그러냐는 이환의 시선을 살짝 피한 채 우는 자기 몫의 풍등을 받아 들었다. 소원을 적어서 날리면 됩니다. 붓까지 건네주며 이환이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풍등에 고심하면서 소원을 쓰기 시작했다. 자기가 아는 모든 이들의 평안과 안전을 기원하는 글귀를 신중하게 적어나갔다. 우는 금방 다 썼는지 더 이상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 마무리 되었다는 걸 확인하자 이환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도 그를 따라 일어났다.
밤하늘의 별들은 모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달이 뜨지 않아서 하늘이 밝지 않았지만 그 어둠이야말로 별들을 아름답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둘은 그렇게 나란히 선 채 풍등을 가볍게 들어 바람에 얹었다. 잠시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이환은 말없이 옆에 있는 우에게 가볍게 물어봤다.
“백우씨는 무슨 소원을 빌었나요?”
그 물음에 우의 입꼬리가 둥근 궤적을 그렸다. 눈 감아봐. 그럼 알려줄게. 굳이 알려주는데 눈을 감아야 하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환은 두 눈을 얌전히 감았다. 움직이지 않은 채 서 있는 그의 주변에 흔들리는 머리카락만이 고요함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야가 까맣게 물든 이환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알려줄 우를 기다렸다. 설마 자신을 두고 혼자 내려갔나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 즈음, 그의 입술에 부드러운 따뜻함이 닿았다. 놀라서 눈을 뜬 이환의 시야에는 활짝 웃고 있는 우의 얼굴이 가득 찼다.
“이게 내 소원이었어.”
멍하니 입술에 손을 대는 이환의 손 끝에도 그 부드러움이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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