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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잡초양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빠른 비트의 음악소리가 고막을 때리는 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타카미네 미도리는 양손으로 잡은 햄버거를 야무지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자기 앞에 턱을 손에 괸 채 앉아있는 모리사와 치아키를 바라보았다. 자기 몫으로 시킨 햄버거 세트, 많이 먹어서 키가 더 커지면 우울해지겠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하기에는 너무 배가 고팠다,와는 다르게 치아키의 앞에는 감자튀김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많이 먹어라 타카미네!”
성장기니까 말이다! 뿌듯한 치아키의 목소리가 소음을 뚫고 미도리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여기서 더 크고 싶지도 않아요.. 미도리의 투덜거림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치아키의 적갈색 눈동자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 애정 어린 시선에 목가가 달아오르는 것만 같아서 미도리는 자기 앞의 감자튀김 하나를 집어 케첩을 찍었다. 바삭한 감자의 끝에 토마토 소스가 동글게 매달렸다. 그는 손을 내밀며 작게 말했다. 아.
치아키는 손바닥에 얹은 얼굴을 반사적으로 들어 입가에 다가온 튀김을 받아먹었다. 우물거리느라 턱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을 본 미도리가 나지막하게 웅얼거렸다.
“..자기가 더 적게 먹으면서....”
“음?”
“아님다. 됐어요.”
못 들었으면 말고요. 두 번 얘기하지 않을 거라는 의도를 풍기며 미도리는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너무하다 타카미네! 장난스럽게 항의하는 치아키의 목소리는 당연히 무시했다. 찬찬히 그를 살펴보았다. 빛나는 적갈색 눈동자를 품은 눈매는 유려하게 흘러가다가 끝이 살짝 올라가 있어 아몬드를 닮아있었다. 작고 오똑한 코, 얇은 입술. 게다가 단추를 한두 개 푼 교복 셔츠 안쪽으로 보이는 골격이 의외로 얇아보였다. 몸집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항상 이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거지? 치아키를 만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도, 풀지 못한 의문이었다.
처음 만나는 모리사와 치아키는 시끄럽고 짜증났다. 옆에서 번쩍이는 플래시를 들이대는 것같이 불쾌하고 거슬렸다. 후하핫! 하고 요상하게 웃는 모습도 짜증나고 어린애처럼 특촬물에 열광하는 취향도, 농구부에 억지로 끌고 간 일도, 아침마다 찾아오는 성실함도, 치대고 안으려고 하는 친근함도, 죄다 짜증났다. 아, 짜증나.. 죽고 싶어. 자신이 치아키를 볼 때마다 웅얼거리던 말이었다.
그래도 치아키를 좋아한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을 때에는 이상할 만치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새빨갛게 불타는 이 사람을 어느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숨 막힐 것 같은 열기를 내뿜은 다음에는 더한 공허함을 남기는 사람이라고, 이럴 거면 아예 오지를 말든가, 라고 원망했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어린 생각에도 어느새 다시 그 온기를 찾아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좋아해요, 모리사와 선배를. 떨리는 두 손을 뒤에 감추고 시선을 돌렸다. 점점 부풀던 마음이 펑 하고 터져서 그 말을 쏟아냈다.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서 고백을 미루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자기가 흘러넘치는 마음을 그대로 내뱉어낸 건 아마 잠시 미쳐버려서인 게 아닐까. 아니, 분명 모리사와 치아키의 웃음이 너무 눈부셔서 그랬을 테다.
절박하게 맺은 목소리의 끝이 묘하게 올라가버려서 순간 죽고 싶어졌다. 노래할 때에도 음이탈을 고백할 때 저질러버리다니. 미도리는 절망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 판결을 가다리는 사람마냥 눈을 질끈 감고 말없이 서있었다. 한참동안 숨 막히는 침묵을 견디다가 그는 자기 손에 닿는 따뜻한, 아니 뜨거운 감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인 건 평소의 호통한 웃음도, 빙긋 웃는 미소도 아니라 수줍음 가득한, 석양이 내려앉은 치아키의 뺨이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은 기억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를 띤 미도리가 콜라를 마시느라 빨대를 입에 문 치아키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좋아해요, 선배.”
이번에는 음식점의 소음이 방해하지 않았는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치아키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쑥스러워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타카미네는 그런 말을 잘도 하는구나! 여유롭게 넘어가고 싶어 하면서도 달아오른 귀는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귀고 나서부터 여러 번 들은 말이었지만 매번 치아키는 눈에 띄게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더 자주 말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미도리는 생각했다. 그는 눈매를 가늘게 휘며 화사하게 웃어보였다. 치아키가 제일 좋아하는 자기 미소였다. 얼굴을 한 층 더 붉히며 당황해하면서도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치아키를 보며 미도리는 마음이 포근해짐을 느꼈다. 역시, 곁에 있으면 따뜻한 사람이야. 유루캬라 다음으로 귀여워.
주머니에 들어있는 티켓은 언제쯤 줄까. 무슨무슨 라이더였던가, 무슨무슨맨이었던가, 관심 없는 미도리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히어로물 연극 티켓을 치아키의 생일선물로 구했다. 이런 건 질색이지만 선배가 좋아한다면 한번쯤은 같이 가줄 수 있지. 즐겁게 고민하던 미도리는 남은 햄버거를 입에 털어 넣었다. 눈동자에 빛을 가득 담아 좋아할 치아키의 모습이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