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자캐

#꼬마_자캐가_3단스페셜_아이스크림을_떨어뜨렸다면(릴리와 대니얼)

잡초양 2018. 8. 13. 19:29

<릴리편>

 

중력. Gravity. 지구가 내핵으로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 혹은 에너지에 일어나는 공간의 왜곡. 먼 옛날 영국의 한 과학자가 머리에 떨어진 사과를 보고 발견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과나 기타 과일과 전혀 상관없이 중력을 수학적으로 풀어냈을 뿐인 그 힘. 지금 중력에 의해 영롱하게 빛나던 아이스크림 세 덩이가 착실하게, 땅으로 추락했다.

 

날개 있는 이는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불행하게도 아이스크림에게는 날개 따윈 없었다. 드라마틱한 모습과 다르게 그 흔한 철퍽하는 소리도 없이 초콜릿, 체리,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이 잔디밭에 나뒹굴었다. 콘에 올라갔을 때만해도 완벽한 동그랗던 형형색색의 아이스크림은 따뜻한 햇살에 금방 녹아 찌그러졌다.

 

..아이...아이스크림.”

 

허망하게 참혹한 광경을 눈에 담던 릴리의 커다란 눈에 물기가 점점 고였다. 위태롭게 눈꼬리에 매달리던 눈물이 툭, 아이스크림이었던 크림 덩어리에 떨어졌다. 크게 울음을 터트리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쉰 순간,

 

잠깐! !”

 

대니얼이 리지의 목줄을 반대 손에 쥐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울지 마. 한손으로 지갑을 열기가 불편했는지 목줄을 이빨 사이에 물고 그가 릴리의 손에서 콘을 뺏어들고 지갑을 건넸다.

 

가서 하나 더 사먹어.”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의 흔적만 남은 과자를 와자작 물며 그가 덧붙였다.

 

너 먹고 싶은 거랑.. 바닐라랑 초코

와 아저씨 최고!”

 

냉큼 양 손으로 가죽 지갑을 꼭 쥔 소녀가 하얀 단발을 휘달리며 도도도도 뛰어갔다.

 

내 껀 컵에다가 하는 거 잊지 마!”

 

앞에 봐, 넘어진다!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아보는 릴리에게 소리친 대니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벤치에 앉았다. 아슬아슬하게 욕심을 부릴 때부터 알아봤다. 혀를 쯧 차고 아이스크림이 잔디밭에 스며드는 모습, 그리고 개미들이 꼬이기 시작하는 광경을 바라보던 그는 휴지를 꺼내 그 위에 덮었다.

 

하여간 우는 아이들은 정말 곤란하다.



<대니얼편>

 

하나도 아깝지 않다.

 

안 아깝다고. 대니얼은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떨어진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차라리 맛보지 않았으면 나았을까. 혀끝에 맴도는 우유 향기에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 소년은 텅 빈 과자를 와자작 씹어 먹었다. 딱딱하고 공허한 맛이다. 아직 어린 소년은 시무룩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 순간, 하얀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가 뒤따랐다. 안녕! 발랄한 목소리에 대니얼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모르는 사람이랑 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아이스크림 떨어뜨렸구나?”

 

아깝지? 다 안다는 듯 한 말투에 대니얼은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딱히! 어차피 설탕 덩어리인데다가 충치의 원인인걸요!”

 

충치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치료를 받아야하는지 모르는 나이였지만 아버지에게서 주워들은 말을 반복하는 대니얼이었다. 하지만 자존심도, 스스로에게 뇌까리는 다짐도 땅으로 시선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어느새 질척하게 녹은 아이스크림이 섞여서 식욕 떨어지는 흙빛이 되어있었다.

 

그래? 설탕덩어리지만 엄청 맛있는걸!!”

 

그런 건 굳이 말 안 해줘도 돼요 아줌마. 속으로만 생각하고 한숨을 쉰 대니얼이 낯선 이를 향해 눈을 흘겼다. ! 하지만 자기 앞으로 불쑥 내밀어진 아이스크림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떨결에 받아버린 대니얼은 자기를 향해 활짝 웃는 릴리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마치 골드버그 장치처럼, 결과가 나오더라도 과정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다.

 

어린애는 맛있는 거 먹고 행복해야 되는 거야~ 받아 애기야.”

 

억지로 쥐어준 아이스크림에는 초록색, 분홍색,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놀랍게도 안정적으로 얹혀져있었다, 아마 은은한 초록색은 피스타치오고 검붉은 과육이 박혀있는 분홍색은 체리맛이리라. 대니얼은 감사하다는 말을 웅얼거리고는 곤란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먹지 말랬는데..”

 

그리고는 아이스크림을 든 손을 릴리에게 뻗고는 우렁차게 답했다.

 

전 괜찮아요! 아줌마꺼는 제가 뺏어먹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