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기본적으로 영웅에게는 숨겨야하는 모습이 있다. 창작물에서도, 현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이 피터 파커라는 걸 드러내지 말아야하고, 슈퍼맨 또한 어수룩한 기자 클락 켄트를 연기하고, 배트맨은 평상시에 브루스 웨인으로 대외 활동을 한다. 물론 어떤 히어로는 그런 거와 상관없이 활동하지만. 금색과 붉은 색으로 화려하게 등장하곤 하던 인물이 떠올랐으나 수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수연은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온 “화장실 마법소녀”위에 커서를 올리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클릭했다. 곧 수백 개의 짤막한 기사들과 수십 개의 영상들이 화면과 그녀의 눈을 가득 채웠다. 천장에서 바라보는 각도라서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어제 머리에 하고 간 핀이 선명하게, 확장된 동공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영상을 클릭했다. 그 영상은 화질이 조금 덜했지만 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무릎 쪽에서 올려다본 각도였다. 치마 안쪽이 드러날 정도로 아슬아슬한 각도의 수연이 품에 작은 펜을 갖다 대고 입술을 움직이자 하얀 빛무리와 함께 영상이 끊겼다.
구역질이 났다. 사람의 가장 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화장실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나 많은 눈들이 있었다니. 온몸이 떨리고 소름이 피부를 달렸다. 분명 공개되지 않은 다른 영상들도 있을 것이다. 변신 할 때 드러난 맨몸을 끈적하게 훑어보고, 몇 번이고 돌려 볼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얼굴,
수연은 몸을 단단하게 굳혔다. 얼굴이 보였으면 어떡하지? 떨리는 손으로 더듬더듬 자기 얼굴을 가렸다. 눈에서 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아서 눈꺼풀을 바쁘게 움직였다. 어떡하지?
이러려고 마법소녀가 된 게 아니었다. 비록 어떤 남자들은 짧디 짧은 스커트의 아래를 찍으려고 음흉하게 고개를 내리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왜 더 빨리 오지 않았냐고 역정을 내기도 했고, 보수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일이었지만 수연은 보람을 느꼈다. 조금이나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서 이 세상이 약간이라도 살기 좋은 곳이 된다면 만족할 수 있었다.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고 수연이 조심스럽게 기사를 클릭했다. 다른 곳에서도 본 영상의 아래에 여러 가지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어떤 댓글은 그녀가 찍힌 화장실의 위치와 옷차림, 그리고 가지고 있는 소지품들을 근거로 그녀의 신상을 추측하고 있었다. 어떤 댓글은 왜 더 아래에서 찍지 않았냐고 왜 변신 직전에 끊었냐고 감질맛 난다는 말을 적었다. 간혹 화장실에서 몰래 촬영한 영상이라는 점에 문제를 제기, “마법 소녀”의 정체를 굳이 캐야하냐는 댓글이 있었지만 다른 말들에 묻혔다.
자기 정체를 낱낱이 파헤쳐서 발가벗기고 싶어 하는 그 역겨운 욕망을 마주한 수연은 언제나 곁에서 떨어뜨리지 않은 마법의 펜을, 손에 쥐고, 저 멀리 던졌다.
-----
마법소녀 변신을 들키면 안되는데(걸리면 죽거나 신상이 위험해짐, 아직 설정 미정) 화장실 몰카에 들켜서 인터넷에 다 퍼지는 내용. 그리고 환ㅡ멸. 약간 도둑놈의 갈고리 같은? 아니면 그런 걸로 피해본 사람이 소원을 빌어서 그런 사람을 다 죽인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