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럿마를 장례식
다이무스 홀든의 장례식은 의아할 정도로 간소했다. 유력가문의 장남이었던 만큼 많은 이들이 직접 애도를 표하기를 희망했으나 홀든 가문은 이런 요구들을 정중히 사양했다. 그가 몸담고 있던 헬리오스, 동맹이었던 지하연합,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만 참석한 자리였다. 돌로 세워진 비석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울음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
마를렌 르블랑은 검은 원피스를 입고 검은 우산을 든 채 눈을 내리깔았다. 무채색의 소녀에게 있어서는 그녀의 머리카락사이에 자리 잡은 하늘색의 머리장식만이 유일하게 색채를 띠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에게서 처음으로 받았던 선물.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남기고 간 흔적. 양갈래를 한 소녀는 검은 구두에 감싸진 자신의 발끝을 멍하니 바라봤다. 사인은 익사라고 했다. 자신이 알던 그 사람은 일부러 강이나 호수를 찾아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물속에서 눈을 감다니, 마를렌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마를렌 언니.”
곁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마를렌은 고개를 들었다. 5년 전의 짧은 머리모양과 다르게 푸른 머리를 어깨까지 곱게 기른 살럿이 보였다. 붉게 물든 눈가 아래 자리 잡은 볼에는 눈물이 지나간 자국이 반짝였다. 샬럿이 위태롭게 떨리는 입술을 꼭 깨무는 걸 지켜보던 마를렌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언니, 괜찮아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는 샬럿의 볼을 타고 물방울이 또 흘렀다. 통통한 뺨을 지나 턱에서 매달리다가 툭 떨어지는 물기를 눈으로 훑던 마를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아.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발걸음을 옮긴 마를렌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젖은 홀든 경에게 다가갔다.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허리를 숙여 인사한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나무랄 곳이 없는, 르블랑 가문의 후계자다운 모습이었다.
문고리를 다급하게 더듬으며 돌리는 손길이 떨렸다. 고급스러운 문짝이 벌컥 열리자 방안으로 쏟아지듯이 마를렌이 들어갔다. 다리가 무너지면서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는 무릎을 가까이 끌어당기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행여나 목소리가 들릴까 악문 잇새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를 따라 들어온 샬럿은 문은 잠그고 그녀의 옆에 얌전히 자리 잡았다. 그리고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채 가련하게 떨리는 어깨에 팔을 둘러 자신의 가슴께로 안내했다.
“여기서는 마음껏 울어도 돼요 언니.”
지금은 가문을 대표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둘뿐이니까요. 상냥한 목소리와 따뜻한 품이 자신을 감싸자 마를렌은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샬럿의 가슴에 머리를 대었다.
“샬럿.. 어떡하지.”
가슴이 너무 아파. 연모하던 이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자 담담하게 연기한 가면이 산산조각 났다. 의연한 후계자의 모습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말도 안 되는, 허무한 죽음. 마를렌은 누군가에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하필 그 사람이었을까. 가늘게 떨리는 검은 뒤통수를 바라보던 샬럿은 손을 내밀다가 손가락 끝이 조금 흔들리자 주먹을 꽉 쥐었다.
‘웃으면 안돼.’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제어하며 샬럿은 붉은 눈동자를 눈꺼풀로 덮었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전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을까봐, 실수로 웃음이 터져버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코를 세게 꼬집으니 눈물샘은 자극받고 그토록 바라던 물방울이 눈가에 맺혔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웃음을 참는 건 조금 더 힘들었다. 그럴 때면 입술을 꼭 깨물거나 손으로 입을 가리고 허리를 숙여 얼굴을 숨겼다. 소녀의 떨리는 등이 키득거림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테니 말이다.
별 하나 없는 밤하늘 마냥 어두운, 사랑스러운 머리카락. 그리고 그 사이 푸르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리본이 눈에 띠었다.
‘마음에 안 들어.’
미간을 살짝 찌푸린 샬럿은 망설임 없이 손을 놀려 가볍게 리본을 풀었다. 머리카락 사이에서 리본이 풀려나가자 흔적 하나를 지운 듯 한 승리감에 웃음이 절로 번졌다. 그 남자가 선물한 머리끈이라면서 기뻐하던 마를렌의 모습, 늘 소중하게 간직하던 모습, 그리고 검은 리본과 고민하다가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않던 아침의 모습까지. 앞으로는 그런 걸 볼 일이 없어서 다행이야. 샬럿은 젖은 듯이 검은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입을 맞췄다. 그렇게 우는 모습마저 아름다워요 언니.
“나는 떠나지 않아요, 마를렌 언니.”
사랑해요. 그 사람은 생각도 나지 않게 해줄게요. 손에 들린 푸른 리본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샬럿이 생각했다. 이제 앞으로는 언니와 둘뿐이라니,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