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고드워드의 말년
“어이, 거기 아저씨.”
웃음기를 품은 미성과 몸을 흔드는 손길에 대니얼 고드워드는 흠칫하며 일어났다. 입가에 축축함을 소매로 닦아 졸고 있는 자신을 보고 키득거림을 흘리던 딸의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여기서 주무시면 입 삐뚤어져도 몰라요? 아직도 졸음에 취해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는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엘리자베스가 종종걸음으로 빨래를 걷으러 갔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걸 확인한 남자는 흔들의자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분명 눈을 감을 때에는 한낮이었는데. 변명하듯이 말을 흘리는 대니얼에게 입꼬리를 들어 올린 리즈가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은 석양을 등지고 있었다.
“됐고, 이리 와서 이거나 들어줘.”
대니얼은 흰 시트를 가리키는 그녀를 향해 미적미적 걸어가서 이불 더미를 품에 가득 안았다. 양손으로 힘차게 이불을 팡팡 두들기다가 커다란 천 공으로 만들어서 자신에게 안겨주는 리즈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등을 덮을 정도로 길어진 머리카락은 빨간 실 마냥 살랑였다. 은하수처럼 흩어진 주근깨도, 단추처럼 앙증맞은 코도, 불타는 머리색도 대니얼과 비슷한 구석이 없었지만 여름 나무를 연상케하는 그 눈만은 닮아있었다. 나무 그늘에서 하늘을 바라봤을 때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도 같이 선명한 녹색. 아니, 어쩌면 발가락도 닮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대니얼은 생각을 바꿨다. 둘 다 발가락이 다섯 개니까.
가족도, 신발도, 길도 잃어버려서 울던 아이를 품에 안고 돌아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제법 머리도 굵어져서 까막눈인 자신에게 글도 가르치고 그가 하던 집안일을 대신 맡기도 했다. 감개무량해진 마음에 대니얼은 그래도 아직 덜렁거리는 딸의 뒤를 쫓아가며 잔디밭으로 떨어지는 이불을 붙잡아 꼭 안았다.
“이거 다 하면 이제 슬슬 저녁 준비해야겠다.”
흥얼거리는 목소리로 소녀가 말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감자도 할 거니까 껍질정도는 까놓으슈. 리즈는 그렇게 투박한 손이면서도 의외로 칼을 능숙하게 다루는 대니얼을 항상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삶은 감자야 자기도 깔끔하게 깔 수 있지만 생감자를 손 안에서 몇 번 이리저리 굴리면 어느새 매끈한 속살을 드러내는 광경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딸의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한 남자는 굳이 이유를 덧붙이지 않고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직도 요령 없고 우직하고 서투른 그였지만 고드워드의 성에서와는 다르게 그 정도 융통성은 생긴 전직 마녀 사냥꾼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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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범하게 지내도 되고 어느 순간부터 다시 마법적인 일에 휘말려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