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하루 하나

대니얼 고드워드의 말년

잡초양 2017. 7. 26. 15:11


“어이, 거기 아저씨.” 


 웃음기를 품은 미성과 몸을 흔드는 손길에 대니얼 고드워드는 흠칫하며 일어났다. 입가에 축축함을 소매로 닦아 졸고 있는 자신을 보고 키득거림을 흘리던 딸의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여기서 주무시면 입 삐뚤어져도 몰라요? 아직도 졸음에 취해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는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엘리자베스가 종종걸음으로 빨래를 걷으러 갔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걸 확인한 남자는 흔들의자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분명 눈을 감을 때에는 한낮이었는데. 변명하듯이 말을 흘리는 대니얼에게 입꼬리를 들어 올린 리즈가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은 석양을 등지고 있었다.


“됐고, 이리 와서 이거나 들어줘.”


 대니얼은 흰 시트를 가리키는 그녀를 향해 미적미적 걸어가서 이불 더미를 품에 가득 안았다. 양손으로 힘차게 이불을 팡팡 두들기다가 커다란 천 공으로 만들어서 자신에게 안겨주는 리즈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등을 덮을 정도로 길어진 머리카락은 빨간 실 마냥 살랑였다. 은하수처럼 흩어진 주근깨도, 단추처럼 앙증맞은 코도, 불타는 머리색도 대니얼과 비슷한 구석이 없었지만 여름 나무를 연상케하는 그 눈만은 닮아있었다. 나무 그늘에서 하늘을 바라봤을 때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도 같이 선명한 녹색. 아니, 어쩌면 발가락도 닮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대니얼은 생각을 바꿨다. 둘 다 발가락이 다섯 개니까. 


 가족도, 신발도, 길도 잃어버려서 울던 아이를 품에 안고 돌아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제법 머리도 굵어져서 까막눈인 자신에게 글도 가르치고 그가 하던 집안일을 대신 맡기도 했다. 감개무량해진 마음에 대니얼은 그래도 아직 덜렁거리는 딸의 뒤를 쫓아가며 잔디밭으로 떨어지는 이불을 붙잡아 꼭 안았다. 


“이거 다 하면 이제 슬슬 저녁 준비해야겠다.” 


 흥얼거리는 목소리로 소녀가 말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감자도 할 거니까 껍질정도는 까놓으슈. 리즈는 그렇게 투박한 손이면서도 의외로 칼을 능숙하게 다루는 대니얼을 항상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삶은 감자야 자기도 깔끔하게 깔 수 있지만 생감자를 손 안에서 몇 번 이리저리 굴리면 어느새 매끈한 속살을 드러내는 광경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딸의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한 남자는 굳이 이유를 덧붙이지 않고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직도 요령 없고 우직하고 서투른 그였지만 고드워드의 성에서와는 다르게 그 정도 융통성은 생긴 전직 마녀 사냥꾼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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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범하게 지내도 되고 어느 순간부터 다시 마법적인 일에 휘말려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