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양 2017. 7. 26. 15:10


 휠체어에 앉아있을 때면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쾌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그 선심 쓰는 눈빛. 아래로 늘어뜨린 눈매에 맺힌 비웃음과 연민, 그리고 동정이 끔찍하게 싫었다. 프리마 돈나의 머리 위로 떨어진 조명처럼, 로희의 커리어는 산산조각 났다. 


 오, 불쌍한 로희.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구나. 그래도 먹고 살만한 돈은 있잖아? 그리고 무대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은퇴하다니 기억에는 남겠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인간들의 입술을 갈라버리고 성대를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로희는 무릎 위이 담요에 놓인 카드를 집었다. 병실에 누워있을 때, 어떤 사람이 주고 간 명함이었다. 얇고 빳빳한 종이의 감촉이 손가락의 피부를 베었지만 로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서늘한 상처가 벌어지면서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어쩔까. 로희가 손가락으로 종이 모서리를 훑자 MUSS라고 짤막한 단어와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명함의 가장자리에 붉은 흔적이 피어났다. 초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유전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정장에 빛나는 흑발을 가진 그 여자는, 후천적으로도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선천적인 능력자의 능력을 “빌릴” 수 있다며.


 대가를 치러야하겠지만. 


 로희는 더 이상 순진한 소녀가 아니었다. 모든 이들의 가장 어둡고, 질척이고, 끈적이는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무스의 주장대로 능력을 “빌린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분명 그 실험체는 죽을 것이다. 장기를 빼앗기고 텅 빈 고깃덩어리가 되는 많은 사람들처럼, 로희가 이 전화번호를 누르면 이 세상에 다른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선천적 능력자라는 이유 하나로. 그녀는 명함을 다시 무릎 위에 얌전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외우던 무스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자신을 동정하던 사람들을 다시 내려다보며 비웃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야. 


 인로희는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