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범죄학 101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초록색 내장과 시체, 그리고 공기를 가득 채운 비린내가 얼굴을 강타하는 것만 같았다. 역시 하루를 시작하기에 가장 끝내주는 일은 역시 주방을 가득 채우는 외계인 내장이다. 방금 출근했는데.. 눈앞에 훌쩍이는 옥탁트를 달래주며 난 생각했다.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자 여덟 개의 촉수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떨리고 세 개의 입이 동시에 말을 꺼내려고 하는 통에 물기 가득한 웅얼거림만이 귀청을 때렸다.
“아.. 저.. 차근차근 말씀해주세요.”
옆에 놓인 박스를 그녀, 그, 외계인들의 성별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에게 건네주었다. 가족을 잃은 외계인은 하얀 휴지로 코를 킁 풀더니 남편이 갑자기 두 눈을 하얗게 뜨더니 오른손으로 자기 손목을 잘랐다는 이야기를 더듬더듬 풀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부엌 바닥의 시체를 바라봤다. 왼손은 저 멀리 떨어져 외로이 널브러져있었다. 쭈글쭈글하게 주름진 손바닥 아래로 미끌거리는 듯 한 빨판이 보였다.
외부 행성에서 지구로 들어온 모든 외계인들은 비자를 발급받으면서 인간의 “육체”를 받게 된다.
간단하게 옷처럼 입을 수 있는 껍데기는 외계인의 정체를 모르는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반대로 인간들로부터 외계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이다. 처음에는 외계인들이 일반 인간들 사이에 버젓이 돌아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어색했지만 요즘은 외계인들보다 인간이 훨씬, 훨씬 더 무섭다. 솔직히 말하면 외계인의 존재가 알려지면 인간들이 이들을 사냥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어색하게 옥탁트 미망인에게 손을 올리려다가 말았다. 그냥 괜히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힘드셨을 텐데 자세한 증언 감사합니다. 밖에 대기하고 있는 차를 타고 가시면 저희가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잘했다 나. 제법 의젓하게 대처한 거 같아서 차오르는 뿌듯함을 억누르고 과부가 되어버린 옥탁트에게 껍데기를 입힌 후 검은 차에 태웠다. 축축하게 젖은 외계생물에서 4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된 그녀의 뒷모습에 허리를 살짝 숙였다가 폈다.
그리고 뒤를 돌자마자 K와 눈이 마주쳤다. 아씨, 깜짝이야.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K의 시선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려는 충동을 이겨내고 경례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목격자의 증언을 확보하고 방금 배웅해드렸습니다.”
“수고했다.”
휙 돌아서는 K는 손에 하얀 고무장갑을 끼더니 부엌 구석에 있던 왼손을 들어올렸다. 인간의 피부를 닮은 무언가, 과학반에서 사귀던 애인이 말해줬던 기억이 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헤어지면서 잊어버렸다, 가 빨판에서 아슬아슬하게 늘어지다가 툭 떨어졌다. 으으..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감각에 부르르 떨었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짜장면이 올라올 것만 같아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지만 K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라텍스 손가락으로 빨판 안을 휘저었다.
“..제법이군.”
“뭐가요? K의 비위가요?”
내 말을 듣지 못한 듯이 그가 다시 덤덤하게 입술을 열었다.
“옥탁트는 심장이 왼쪽 손목에 있지. 이 자는 그 부분을 정확하게 절단했어.”
“으아,,선배님! 굳이 안 보여줘도 돼요!”
절단면을 보여주려던 K에게 손사래를 치며 소리쳤다. 소름끼쳐하는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는 말을 이었다.
“보통은 타종족의 신체구조를 알고 있진 않지. 특수한 직업군이 아닌 이상.”
당연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같은 사람이나 의사가 아니면 관심도 없죠 솔직히. K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청부살인업자 또한 그렇지.”
이건 옥탁트의 신체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한, 계획범죄라는 소리다. 갑작스러운 폭탄발언에 순간 멍해졌다.
“아니 근데 자살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 리가.”
당연한 말을 하는 듯 한 목소리로 선배가 말했다. 내가 멍청한 건가. 꿈뻑거리는 나를 위해 하나 하나 짚어주기 시작했다.
“칼이 닳아있는 면을 봤을 때, 이 옥탁트는 왼손잡이야. 심장을 노리는 거라면 칼을 고정시키고 왼손을 사용하는 편이 더 쉬웠을 거야.”
그리고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식당 오픈 준비를 했다는 점도 주목해볼만하고. K는 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뭐라고 빠르게 끄적이며 이어 말했다.
“아무튼, 우리 데이터가 소용없을 거다. 청부살인업자라면 밀일성했을 게 분명하니까.”
“아... 왜 하필 지구에 와서.”
한손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짜증나, 난 그냥 철밥통을 노리고 온 거 뿐인데. 내 안의 소용돌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K는 탁 소리를 내며 수첩을 덮었다. 여기 서있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없어.
“이게 위로라면 K는 정말 재능이 없네요..”
“따라오도록.”
성큼성큼 걸어가는 선배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