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AU 강력반장 김두식!과 훈이
강력 1반은 그 이름에 풍겨오는 이미지와 다르게 점심을 먹은 후 느긋하게 커피 한잔을 즐기고 있었다. 자주 있는 평화로움도 아니었고,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에 불과했지만 가끔 가뭄에 콩 나듯이 조용한 분위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여유로움을 한방에 깨부순 건 문짝을 박차고 들어온 김두식이었다.
짧은 더벅머리에 뒷목까지 시원하게 드러난 와이셔츠. 손가락에 낀 굵은 금반지와 목에 걸린 금목걸이. 사람을 위축시키는 위협적인 눈매는 불쾌함에 젖어 더욱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다가 얼굴의 베인 흉터는 얼핏 보면 조폭 두목을 연상시키게 했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고 있던 형사들은 비록 놀라기는 했지만 곧 일사분란하게 일어나 그에게 경례했고 강력 1반 반장 김두식은 자기 자리로 씩씩거리며 걸어갔다. 자리로 가까이 다가가자, 한 남자가 사건 파일 여러 개를 부채꼴로 펼쳐놓은 채 종이에 손을 부지런히 놀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손과 가끔 흔들리는 머리카락만 아니었더라면 멈춰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해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식은 개의치 않고 자기 의자에 앉아 있는 이를 발로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비켜라.”
두식의 책상을 차지하고 있던 훈은 그제야 고개를 들더니 씨익 웃으며 인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면서도 그는 넓은 책상에 늘어뜨려놓은 메모와 파일을 부지런히 정리했다. 아무리 이론을 기반에 두고 있는 자신이라도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범죄 양상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훈은 자기가 조언해줌으로써 해결된 사건 파일을 한번 더 보는 습관이 있었다. 아무래도 범죄 심리면 몰라도 범죄 그 자체에 대한 전문가들은 따로 있었으니. 그런 면에서 훈은 항상 두식이 신기했다. 여러 해 동안 쌓아올린 경험과 동물적인 직감으로 판단하는 능력.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여기 앉으시죠 형님. 어느 새 깔끔해진 책상과 의자에 장난스럽게 손짓을 한 그는 책상 모서리에 반쯤 걸터앉고는 입을 열었다.
“시말서죠?”
움찔하는 두식의 반응에 역시 그랬다는 듯이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훈이 설명했다. 형님, 지금 얼굴 완전 죽을상인데 그거 얼마 전에 잡은 사탕 바구니 사건 때문인거잖아요. 그 새끼 때렸다고 지금 한 소리 듣고 오는 길 아니에요?
“사탕 바구니”라고 훈이 명명한 사건은 어린 아이들을 납치하고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붙여서 수은이 들어간 사탕을 제 손으로 직접 먹게 만든 사건이었다. 굶주림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아이들은 사탕의 미묘한 쇠맛을 감지하지 못한 채 달콤함에 취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범인의 요구대로 몸값을 지불한 부모들은 목숨보다도 소중한 아이들이 수은 중독으로 기억력 및 중추신경에 손상을 입은 채 움찔거리는 걸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한 아이는 운 좋게도 일찍 구출되었다. 하지만 기억력이 그나마 덜 손상되었다고 기대했던 것도 잠시, 그녀는 배고픔을 이겨내지 못한 채 ‘사탕’을 먹어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죄의식으로 유괴당한 기억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범인의 동기와 행보를 예측하는 데에 조언을 하던 훈이 자기 전공을 살려서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자기가 정말 잘못한 게 아니냐고 몇 번이고 확인 차 되묻던 소녀의 얼굴이 떠올라서 훈은 잠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범인이 검거되었고 그녀를 비롯한 다른 피해 아동들이 현재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범인은 예상대로 가학적이면서도 자아도취적인 성격이었다. 자기는 타인의 행동을 조정할 수 있는, 그렇기 때문에 일반 대중과는 다른 존재라는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견딜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자기 계획이 간파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자포자기해버리고 공격적인 태세를 취했다. 아름답지 못하느니 차라리 누구라도 길동무 삼아서 다 같이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했었던가.
“나 아니었으면 그 놈 잡다가 다 디질 새끼들이!”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친 두식이 씹어내듯이 뱉어냈다. 잘못한 거 없다. 내가 안 때리면 내가 죽게 생겼고 그 새끼가 지 입으로 매를 벌었다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그는 계속 투덜거렸다.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 훈은 동감하는 바였지만 아무래도 높으신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두식의 첫인상과 비슷하게 거친 검거방식이 행여나 경찰 전체의 이미지에 손상을 줄까봐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속으로 혀를 쯧 찬 훈이 손을 걸치고 있던 잠바 주머니에 넣고는 말했다.
“암요. 같잖은 놈이 나불대기는 엄청 나불거렸죠.”
그나저나 이번에도 시말서 빠꾸나면 큰일이겠어요, 형님?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지은 훈이 두식을 향해 은근히 말을 던졌다. 언제나 시말서를 단번에 통과시키지 못하는 두식은 눈에 띄게 동요했다. 얼마 전에 그가 쓴 시말서를 훈이 본 적이 있다. 죄송하다는 말을 바라는 거 같아서 쓰긴 썼지만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글. 두식의 성격다워서 웃음이 터트렸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몇 군데 손 본 후에 돌려줬는데 고맙다는 의미로 그에게서 저녁을 얻어먹는 것이 꽤 쏠쏠했다.
“이번에는 뭐 사줄꼬?“
이번 달 월급이 얼마나 남았는지 머릿속에서 잠시 셈을 한 두식이 물어보자 은밀한 거래를 하듯이 훈이 목소리를 낮췄다.
“요즘 한우가 차암 맛있다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