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하루 하나

묘사만으로 글

잡초양 2019. 3. 8. 00:02

 

시야의 끝자락 저 멀리, 태양이 그 날 하루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단풍나무숲 전체에 내리쬐는 작별인사가 나뭇잎을 다정하게 물들였다. 이 시간대의 햇살은 따뜻하면서도 눈부시지 않은 게, 마치 오랫동안 쥐고 있는 조약돌 같았다. 손에 들고 이리저리 굴리면 둥근 선이 부드럽게 손바닥을 간질이고, 체온을 머금어 점점 따뜻해진다. 그러면서도 피부를 데일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지는 않아 깜짝 놀랄 염려도 없이 온화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래에서는 낙엽이 바스라졌고 마른 나뭇잎 향기가 공중을 맴돌았다. 갓 산 책처럼 깔끔한 그 냄새의 끝자락에는 은은한 달콤함이 맺혀있었다. 신발 바닥에 밟히는 나뭇잎은 다른 낙엽과 비벼지자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숲속을 채워갔다. 나무 둥치가 의자고 하늘이 지붕인 작은 도서관에서 독서하는 이용객들로 가득했다, 도서관의 한가운데에는 제법 큰 호수가 잠들어있었다.

 

호수는 거울처럼 세계를 반대로 머금고 있었다. 이따금 흔들리는 물결이 생길 때마다 일렁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왼쪽이 오른쪽이 되고 오른쪽이 왼쪽이 되는 그 세상에 풍덩, 빠질 것만 같았다, 조심조심, 호수의 가장가리를 따라 걸어가다가 발끝으로 괜시리 잔잔한 풍경을 뒤흔들어보았다. 파란 세상을 뒤흔드는 파란. 물결에 따라 웃음소리도 함께 번졌다.